“같은 나무도 산 밑이냐 산 위냐, 동쪽이냐 서쪽이냐에 따라 다르게 자랍니다. 40년 넘게 나무를 만지다 보니 잘 자란 나무를 보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어요. 어떤 게 좋은 나무냐고요? 단단하면서도 빛이 곱고 ‘칼’을 잘 받아야지요.”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이경호 영림목재 회장(64)은 ‘전쟁둥이’다. 그의 부모는 6·25전쟁이 터지자 젖먹이를 안고 월남했다. 평양에서 톱 수선을 하던 부친 이용복 씨(작고)는 1969년 인천에서 제재소를 차렸다. 맥주와 간장 등을 담는 나무박스를 짜는 공장이었다.

이 회장과 나무의 인연은 부친이 가업을 시작하면서 맺어졌다. 학교에 다니며 틈틈이 부친 회사에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묶고 했으니 햇수로만 벌써 45년이다. 이 회장이 본격적으로 제재소 경영에 나선 것은 28세 때였다.

이 회장은 지난달 목재산업단체총연합회장에 취임했다. 연합회는 합판과 목재칩 제재목 등 목재산업 관련 단체 16개가 모여 만든 사단법인이다. 연합회장은 ‘목재산업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맛있는 만남’ 장소로 ‘부원집’을 택했다. 인천 송도 구시가지에 있는 40년 전통의 한식당이다. 출입한 지 20년이 넘은 이 회장의 단골집이다. 이 회장과의 만남은 지난 7일 오후 7시쯤 이뤄졌다. “내가 서울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인천에서 활동하는 기업인이니까 당연히 인천에 있는 식당을 골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이곳으로 정했다”며 “멀리서 이렇게 찾아와줘서 정말 고맙다”며 기자들을 맞았다.

◆식당 주인 못지않은 음식 자랑

식당 한쪽에 있는 방에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원목으로 된 식탁이 놓여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습관처럼 나무를 쓸어내리며 얘기를 시작했다. “보세요. 상판 나이테 간격이 넓지요. 빨리 자랐다는 얘기입니다. 비싼 나무는 아니에요. 제일 비싼 나무는 악기에 쓰이는 것입니다. ‘뮤직 그레이드’라고 하는데, 나이테가 1인치 안에 7개나 들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추운 지방에서 천천히 자라 단단하고 뒤틀림이 거의 없는 나무지요.”

이 회장은 고급 식당은 아니지만 음식맛은 끝내준다고 자랑했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돼지 보쌈과 두부탕, 찐 오징어 등이 일품이라고 했다.

처음 나온 음식은 돼지 보쌈이었다. 살집이 두툼한 수육에 먹음직한 색깔의 무채 무침과 배춧속, 그리고 잘 익은 홍시 빛깔의 멍게가 한 그릇에 담겨 나왔다. 이 회장은 식당 주인보다도 음식에 대해 잘 아는 듯했다. “원래는 멍게 대신 굴인데, 요새 굴 맛이 좀 써요. 그래서 대신 멍게가 나왔네요. 여기 굴은 크기가 작은데 자연산이라 그래요. 할매들이 직접 쫘서(그는 굴을 딴다는 것을 쫀다로 표현했다) 가져온 것만 쓰지요. 멍게든 굴이든 뭐든 하루 이상 된 거는 안 씁니다.” 맛을 보니 짭짜름한 멍게와 따뜻하고 달콤 단백한 수육이 시원한 배추쌈과 어울려 절묘한 맛을 냈다. 인천에서 내로라하는 ‘주당’인 이 회장은 “술이 돌지 않으면 얘기도 잘 안 나온다”며 술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무 관련 회사가 세 개입니다. 가구와 조경목 바닥재 특수목을 하는 영림목재가 있고, 자회사로 팰릿과 포장박스 등 물류기기를 만드는 장연, 제재목을 만드는 현경이 있습니다. 장연은 막내 아들(이 회장은 1남2녀를 두고 있다)이 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 합해서 직원 100여명에 매출 400억원 정도 합니다. 영업이익은 4~5% 정도? 가구는 책상과 의자, 책장을 합해 한 세트가 수천만원 하는 고급 제품을 주로 취급합니다. 배우 배용준 씨가 저희 제품을 쓰고 있고, 얼마 전 야구선수 류현진 씨도 구입했다고 들었어요. 값 비싼 제품을 주로 만들다 최근엔 중저가로 제품군을 다양화하고 있습니다.”

◆“나무 공부하기 위해 일본 유학”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경호 영림목재 회장 "결 좋은 나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막 뛰어요"
영림목재는 120여종의 특수목을 취급하고 있다. 악기나 공예품, 인테리어와 스포츠용품, 조경목 등에 사용하는 고급 특수목을 수입·가공해 판매한다. 특수목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사업 규모가 가장 크다. 썩지 않는 특수목으로 외부를 마감한 인천 남동공단 내 영림목재 본사 건물(5층)은 인근에서 명물이다.

그는 벌거숭이 민둥산에 나무를 심은 1970년대 녹화사업에 대해 얘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민둥산에 속성수인 낙엽송과 리기다송, 아카시아 등을 많이 심었습니다. 가장 빠른 속도로 조림에 성공한 사례인데, 이게 경제성이 떨어져요. 합판이나 각목, 펄프 정도로 쓰는 정도입니다.”

이 회장은 목재에 관해 전문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 50대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2002년 회사를 경영하다 일본 와세다대로 1년 연수를 갔습니다. 목재 선진국인 일본은 나무를 어떻게 가꾸고, 활용하는지 공부하러 갔죠. 그때 뼈저리게 느낀 게 품종 개량이었어요. 우리의 토양과 강우량, 일조량에 적합한 경제성 있는 나무 종자를 빨리 개발해야 합니다.”

이 회장은 요즘 국산 나무를 활용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낙엽송은 바닥재 천장재 내장재 등으로, 리기다송은 방부 처리한 뒤 옹벽이나 농수로 하상방틀, 벤치용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냈다. 낙엽송을 구조재로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구조재는 섭씨 1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건조한 뒤 목조주택용이나 난간 데크재로 사용한다.

목재 얘기가 한창일 즈음 두 번째 음식이 나왔다. 두부탕과 찐 오징어였다. 두부탕은 바지락과 상합(조개 일종)으로 국물을 내고 두부와 콩나물로 맛을 냈다. 담백했다. “맛이 끝내주는데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양념 없이 쪄서 먹기 좋게 잘라 나온 오징어는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같은 나무도 산 밑이냐 산 위냐, 동쪽이냐 서쪽이냐에 따라 다르게 자랍니다. 40년 넘게 나무를 만지다 보니 잘 자란 나무를 보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뛰어요. 어떤 게 좋은 나무냐고요? 단단하면서도 빛이 곱고 ‘칼’을 잘 받아야지요. 불상을 만드는 캐나다 옐로시다(황삼목)가 그런 나무입니다. 불상을 만들 때는 콧날과 눈매가 잘 나와야 합니다. 장인이 칼을 딱 줬을 때 나무가 잘 받아줘야 눈매가 살고, 콧날이 잘 나와요. 속까지 검은 에보니(흑단)나 붉은색의 로즈(자단)도 있지만 거의 멸종 위기여서 보기 힘들지요.”

이 회장은 그러면서 “나무와 대화할 수 있어야 진정한 나무쟁이”라고 귀띔했다. 나무를 만지고 보면서 상태를 짐작하고 더 잘 보살피고 관리할 수 있어야 좋은 나무를 잘 쓸 수 있다는 얘기다.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두 차례 회사 문을 닫을 뻔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3년에 목재 값이 급등락한 적이 있습니다. 사재기 광풍이 벌어져 비싼 값에 자재를 사뒀는데, 갑자기 값이 급락했습니다. 팔 수도 없어 목재가 썩어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죠. 외환위기 때는 은행 사람들까지 와서 ‘차라리 가족을 위해 부도 내고 감방에 가라’고 얘기했을 정도였습니다. 환율이 달러당 800원 하던 것이 1400~1500원까지 오르면서 결제대금이 말도 못하게 뛰었습니다. 하루 새 7000만원이나 빚이 불어나던 때였습니다. 모친이 지인들로부터 급전을 빌려 은행에 맡겨 놓고 하루하루 버텼습니다. 그때 한 마음고생 때문에 머리가 다 하얘졌어요. 지옥을 두 번 겪고 나니까 이제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아요. 하하.”

◆“원자재 가격 통제 때 술 많이 먹어”

바삭하게 구운 박대구이가 나왔다. 이 회장은 한 점씩 들라고 권하면서 술잔을 들었다. 요즘 많이 입에 오르는 규제에 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옛날에는 원자재 가격도 규제한 적이 있습니다. 목재 합판 등을 얼마 이상으로 팔지 못하도록 가격을 통제했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 가격을 통제하니까 난리가 났습니다. 모두 자재를 확보하려고 아침부터 자재회사에 가서 진을 쳤죠. 어떻게든 담당자를 만나려고 한 거죠. 그때 술을 많이 먹어 한때 의사한테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최근 나온 법안 중에서는 ‘근로시간 단축 법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람을 구하기도 힘든데 근로시간을 단축한다? 근로시간 단축 법안이 시행돼도 현장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범법자가 되더라도 계속 공장을 돌려야지요.”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경호 영림목재 회장 "결 좋은 나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막 뛰어요"

이경호 회장의 단골집 인천 '부원집' 두툼하게 썬 수육에 담백한 두부탕 곁들이면 '별미'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경호 영림목재 회장 "결 좋은 나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막 뛰어요"
인천 송도유원지 ‘먹자거리’(동춘동)에 있는 부원집은 담쟁이넝쿨이 드리워진 건물 외벽이 멋스럽다. 돼지고기 보쌈과 두부탕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 돼지고기 수육을 두툼하게 썰어 부드러운 육질을 느낄 수 있다. 김칫소와 아삭한 배춧속, 굴, 멍게 등 신선한 해산물을 곁들인다. 보쌈은 4만원.

보쌈 안주에 반주한 뒤 먹는 두부탕의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인공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 집 주인의 원칙이 국물맛에 그대로 녹아 있다. 두부탕은 1만5000원. 주인이 손으로 대충 싼 듯한 김밥도 두부탕과 궁합이 좋아 별미다. 넉넉히 썰어 넣은 부드러운 두부와 상합조개, 바지락, 콩나물, 청양고추 등이 조화를 이룬다.

밑반찬도 정갈하다. 얼음과 청양고추를 동동 띄운 시원하고 새콤한 무챗국과 열무김치의 맛이 깔끔하다. 저녁식사만 가능하며 예약은 필수다. (032)819-1429

영림목재 대표 제품 '우든 칼라 박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경호 영림목재 회장 "결 좋은 나무를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막 뛰어요"
영림목재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우든 칼라 박스’. 수박 배추 등 농수산물뿐만 아니라 공산품도 담을 수 있는 나무상자다. 혼자서도 내용물을 안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테두리를 한 층씩 올릴 수 있다. 영림목재는 지난해 12월 자동제작 기계를 도입, 월간 2만여 세트(한 세트 4단으로 구성)를 생산하고 있다.

박수진/추가영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