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체인점 ‘국대떡볶이’ 매장에 들어
[한경데스크] 퇴출시켜야 할 이념적 언어들
서면 벽면의 문구 하나가 눈에 띈다. ‘외부 음식 반입 환영.’ 이 글귀가 있다고 해서 국대떡볶이를 찾는 손님들 중 애써 다른 음식을 가져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손님들에게 ‘배려’ ‘너그러움’과 같은 따뜻한 이미지를 주게 되는 것은 분명하다.

서울 다동의 등갈빗집 골목에는 이런 간판을 단 가게가 있다. ‘KBS MBC SBS TV방영 안 나간집.’ 이 간판에서 손님들은 음식맛에 대한 주인의 ‘자신감’을 느끼게 된다. 간판을 바꾸고부터 매출이 40% 뛰었다고 한다.

적개심 부추기는 용어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듯 표현이나 용어 하나가 우리들의 무의식에 영향을 주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자동차 영업사원을 ‘카 마스터’로, 보험 설계사를 ‘라이프 플래너’로, 백화점 청소부를 ‘클린 마스터’로 부른다고 본질적으로 그들이 하는 일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본인들이 자부심을 더 느끼고, 고객들이 신뢰감을 더 갖게 된다면 호칭 변경의 효과는 긍정적이다.

반대로 무신경한 표현으로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지하철 역내 엘리베이터에서 듣게 되는 안내 방송 중 ‘주위에 노약자나 취객이 있으면 도와주라’는 멘트가 있다. 이 말대로라면 취객을 기피하는 대부분의 승객은 시민 의식이 실종된 사람들이다. ‘취객은 엘리베이터 이용에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몇 년 새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한 용어 중 ‘경제민주화’ ‘갑을(甲乙)관계’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있다. 우리 사회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용어들에는 ‘함정’이 있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에 편중된 부의 집중을 완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입법 활동이다. 그런데 취지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겠다고 하면서 ‘민주화’라는 이념적 용어를 갖다 대는 바람에 대기업을 반(反) 민주세력으로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결국 ‘적개심’을 먹고 살게 돼 있다. 경제민주화라는 모호하고 위험한 용어 대신 ‘공정거래’ 등의 명확하고 중립적인 표현으로 바꿔 써야 한다.

사회의 품격도 언어가 좌우

계약서상의 쌍방을 나타내는 ‘갑을’은 기본적으로 우열이 아닌 대등한 관계의 표현이다. 영어로 말하면 AB 격이다. 선거구를 나눌 때도 강남갑, 강남을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언론에서 ‘갑을’이 거론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甲질’ ‘甲의 횡포’ ‘슈퍼甲’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오른다. 일부 기업이 계약서에서부터 ‘갑을’이란 표현을 없애고, 계약 쌍방의 이름을 모두 적시키로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경단녀’는 우선 어감부터 좋지 않다. 된장녀·명품녀·개똥녀 등 여성을 비하하는 ‘00녀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사회생활을 하다 전업주부가 된 여성들을 모두 ‘경력단절’의 피해자로 묶는 것은 보편화의 오류다. ‘경단녀’보다 덜 자극적인 ‘재취업 희망 여성’ 등이 더 적합한 표현일 듯하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한 신부는 이를 ‘내가 쓰는 말이 곧 나’라고 풀이했다. 우리 사회의 모습도 우리가 쓰는 언어에 달려 있다.

윤성민 생활경제부장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