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이강원 특파원=미국의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점화·에어백 장치 결함을 알면서 쉬쉬해왔는데도 250만대 이상의 대규모 리콜사태가 불거진 계기는 무엇일까? 당연한 소리지만 제너럴모터스의 뒤늦은 '양심고백' 때문은 결코 아니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29일(현지시간) 1면 주요기사로 한 민간 엔지니어의 집요한 뒷조사로 제너럴모터스 차량의 점화·에어백 장치 결함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 지금의 리콜사태로 확산했다고 보도했다.

플로리다에 사는 자동차 기술자 마크 후드는 2012년 가을 자동차 사고와 관련한 조사 의뢰를 받았다. 2010년 조지아주에서 쉐보레 코발트를 타고 가다 사망한 여성 운전자 브룩 멜튼의 가족들이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해달라고 의뢰한 것이다. 당시 멜튼의 가족은 제너럴모터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

조사를 의뢰받은 후드는 점화 장치 조절 스위치를 놓고 사진촬영은 물론 X선 촬영까지 했다. 심지어 스위치를 분해한 뒤 조사를 벌였지만 도무지 원인을 찾지 못했다. 실험과 조사를 계속하기 위해 제너럴모터스 대리점에서 동일한 스위치 부품을 30달러에 구입한 것이 반전의 계기가 됐다. 새로 구입한 스위치 부품과 앞서 실험한 부품은 동일한 품목이어서 제품번호마저 꼭 같았는데도 실제 모양에서는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피스톤을 작동시킬 때 사용하는 '메탈 플런저'의 길이가 서로 약간 달랐다. 새로 구입한 메탈 플런저의 길이가 더 길었던 것이다. 스위치에 사용된 스프링의 탄성도 새 부품이 강했고, 점화 장치를 켜거나 끄는 데 필요한 동력도 새 부품이 더 컸다.

후드가 구입한 30달러짜리 부품의 크기는 작았지만 약간의 설계 변경이 자동차에는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을 후드는 알아냈다. 이후 후드는 제너럴모터스와 부품공급업체 델피가 이 부품을 2006년에서 2007년 초 사이의 한 시점에 교묘하게 부품 설계변경을 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제너럴모터스가 결함을 알고도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설계변경을 통해 결함을 은폐한 것이다.

지난해 제너럴모터스가 언제 어느 차종을 대상으로 설계변경이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외부 전문가까지 고용했을 정도로 당시 제너럴모터스의 설계변경은 극도의 보안 속에 몰래 이뤄졌다.

뉴욕타임스는 후드의 뒷조사가 미국 최대 자동차 업계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은 엄청난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후드가 조사를 벌였던 멜튼의 교통사고 관련 소송은 지난해 종결됐다. 이와 관련, 미국 연방 의회는 내주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 사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진상조사 청문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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