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특히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해 5월 기준금리 인하를 내다봤던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금리를 동결했던 것에 대해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한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점도 인정했다. 반성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이달 말 퇴임하는 김중수 현 총재가 금리를 올려야 할 때도, 내려야 할 때도 실기했다는 사실을 정면 비판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물론 이 후보자의 말마따나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관건은 신뢰다. 중앙은행이 당초 시사했던 방향대로 예측가능한 정책을 펴야 혼선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후보자의 소통론에는 걱정되는 바가 없지 않다. 소통하겠다는 그 시장이 단지 금융시장만이어선 안 되는 것이다. 금융시장에는 한은의 통화·신용정책 변화를 예단하는 투기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금융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시장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소통이라고 한다면 안 될 말이다. 그것은 결국 포퓰리즘에 불과하다. 국민경제 전체를 고려해야 하는 이상, 투기꾼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게 한은이다.

화폐의 타락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터다. 이미 감당 못 하는 적자에 빠진 정부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국채를 팔아 재정자금을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퓰리즘 정치가 중앙은행을 타락시킨다. 미국은 그래도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했고, 엊그제 재닛 옐런 Fed 의장은 올 예상 성장률을 소폭 내리면서도 테이퍼링을 고수했다. 그러나 일본·유럽은 아직도 중앙은행을 통해 막대한 돈을 시중에 풀고 있다. 일본과 유럽 중앙은행은 미 중앙은행과는 달리 고용과 성장이 아니라 오로지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정책금융공사 주택금융공사 등에 대한 지분출자, 추가 증자 등에 끊임없이 한은을 끌어들이려고 든다. 이런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한은의 기본 책무가 중요한 때다. 무엇보다 정치적 독립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 무차별적이고 보편적인 통화정책은 그 핵심이다. 말장난으로 여기면 안 된다. 이주열 총재 후보자는 4월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한은의 자세를 엄중하게 지켜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