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00년 家業 가로막는 상속세 체계
가업인 중소기업을 승계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상속·증여세 부담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의 가업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업상속에 따른 조세부담 탓에 금융회사에서 차입하거나 상속재산을 처분하는 경우가 승계기업의 절반을 넘었다.

가업 승계에 따른 조세부담으로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유럽위원회(EC)에 따르면 유럽 기업의 70~80%는 가족기업이며 이들이 국민소득의 40%, 고용의 42% 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이들 기업 중 40% 이상이 가업승계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래서 EC는 가족기업의 후계자가 사업을 계속할 경우 증여나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도록 권고한 바 있다. 이런 조세가 승계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줘 고용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가업승계에 대한 조세부담을 낮췄고 스웨덴은 아예 2004년 상속세와 증여세를 폐지했다.

한국도 올 1월1일 세법이 개정돼 가업승계에 따른 조세부담이 줄었다. 상속세 공제 대상을 연매출 2000억원 미만에서 3000억원 미만의 승계 기업으로 확대하고, 상속세 과세를 300억원 한도에서 최대 500억원까지 늘렸다. 그러나 가업승계의 조세부담을 줄이는 데 대해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존재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부의 무상이전에는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재의 상속은 소비재나 금융자산의 상속과는 다르다. 생산설비와 같은 자본재는 소비의 대상이 아니어서 아무리 많이 상속받더라도 상속인이 즉각 누릴 수 있는 이익이나 혜택은 없다. 뿐만 아니라 지본설비는 관련 당사자들에게 다양한 이익을 준다. 많은 근로자에게 고용의 기회를 제공하며 각종 조세를 부담해 정부 재정에 도움을 준다. 물론 가업상속에 대한 과세를 줄이면 부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능력을 갖추지 못한 후계자가 상속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 세제 혜택을 유지하기 위한 제약 때문에 새로운 사업의 확장이 지연되거나 불필요한 고용부담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상속세 체계는 가업승계에 따른 조세부담을 줄이면서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가업승계에 대한 상속세율 자체를 낮춰야 한다. 현재의 상속세율은 가업을 승계하거나 금융자산을 상속받거나 무관하게 30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50%로 동일하다.

가업승계 혜택을 받기 위한 요건도 완화해야 한다. 지금의 공제 요건은 지나치게 까다롭다.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해 기업을 경영해야 하고 상속인은 상속개시 전에 2년 이상 직접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 그것도 상속인 1인이 가업을 전부 상속받아야 한다. 그래서 혜택을 받은 기업이 2012년에 35명, 금액으로는 57억원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상속 후 10년간 업종을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속세 공제의 사후 요건을 엄격하게 한 것은 가업 승계라는 명분에 집착한 때문이다. 하지만 사후 요건이 엄격할수록 자본설비의 생산적 이용가능성은 줄어든다.

상속세는 부의 불평등을 해소한다고는 하지만 이로 인해 생산설비의 비효율적 사용이 초래된다. 생산설비 같은 자본재는 소비의 대상이 아니므로 불평등 배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재의 비효율적 사용에 따라 투자 기회나 고용 기회가 줄어드는 게 문제다. 상속받은 자본재의 사용에 따른 이익은 소득세나 자본 이득세 등을 부과하면 된다. 이제는 가업상속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의 기업승계에 대해 상속세율을 낮추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정기화 < 전남대 경제학 교수 ckh8349@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