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차기 한국은행 총재에 이주열 전 부총재를 내정했다. 애초 언론에 거명됐던 총재 후보군의 하나여서 깜짝 인선은 아니다. 35년 한은맨이었기에 흐트러진 조직을 수습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도 듣는다. 한은 내 요직을 두루 거친 통화정책 실무 전문가라는 데도 이견이 없다. 청와대가 “한은 업무에 누구보다 밝고, 판단력과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식견과 감각을 갖췄으며, 합리적이고 겸손해 조직 내 신망이 두텁다”고 밝힌 인선 배경이 틀리지 않다.

그동안 총재의 자격요건을 놓고 영어 능력, 국제기구 근무경험, 해외 명문대 출신 등 온갖 스펙론이 난무했던 것에 비기면 잘한 선택이라고 본다. 이 후보자는 그 흔한 아이비리그 박사도 아니고, 국제기구에서 안면을 쌓지도 않았다. 정치력을 겸비한 마당발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2012년 부총재 퇴임식 때 김중수 총재의 조직 운영방식에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던 이력도 있다. 그런 점에서 후보자들 가운데 중앙은행의 관리자로선 최선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통화정책의 최종 결정자로서 그의 역량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게 없다. 통화정책 스태프 경력이 고독한 결단이 요구되는 중앙은행 총재의 필요충분 조건이라고 볼수는 없을 것이다. 직원 신망이 두텁다는 것은 역으로 한은 조직편향적 행보의 압력이 될 수도 있다. 한은 임직원들이 간혹 착각했던 게 ‘중앙은행의 중립성’(한국은행법 제3조)을 정부와 일절 담을 쌓거나 항일 독립투쟁쯤으로 여기는 것이었다. 이 후보자가 이끌 한은은 중립성을 ‘명예’이자 ‘멍에’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난 4년간 한은은 금리를 올릴 때도, 내릴 때도 뒷북이었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부지런히 해외출장을 다닌 총재 덕에 국제위상이 높아졌을지 몰라도, 국제금융시장의 엄혹한 변화에 제대로 대처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 세계는 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질서, 테이퍼링과 출구전략,신흥국 위기, 금리와 환율 변화 등 온통 안갯속이다. 차기 한은 총재로서 지혜를 발휘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