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웅 지식사회부 차장 redael@hankyung.com
[한경데스크] 법으로 선행학습 막는다고?

초·중·고교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이 최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통과함에 따라 올 2학기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초·중·고 교육과정에 선행학습을 시키거나 고입 대입 등 입시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를 출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정작 공교육을 담당하는 현직 교사들조차 그다지 반갑지 않은 표정이다.

무엇보다 어디까지를 선행학습으로 규정할지가 모호하다. 법안에는 ‘국가 교육과정을 벗어난’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예습과 선행학습이 얼마나 다른지도 명확하지 않다. 대부분 고교에서는 3개년 교육과정을 2년 내에 끝내고 3학년 땐 대입시험에만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일선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6%가 ‘시험문제가 교육과정에서 벗어났는지 규정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우려되는 풍선효과

공교육에서 선행학습을 금지시킨다고 사교육이 줄어들지도 의문이다. 이달 초 서울시교육청이 우촌유치원과 우촌초교에 내린 기관경고와 시정요구도 논란을 빚었다. 유치원에서 영어교육을 시키고 초등학교 5·6학년 사회·과학·수학 등의 수업을 영어로 가르치는 ‘몰입교육’을 했다고 해서 이를 금지시켰지만 학부모들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도 일부 학부모들은 영어몰입교육 금지가 교육받을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사교육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하소연이다.

교육공무원들은 ‘사교육 총량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어떠한 대책을 내놓더라도 사교육을 시키려는 학부모의 욕구를 잠재울 수는 없고,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 사교육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최근 교육부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과목을 쉽게 내겠다고 밝히자, 변별력 확보를 위해 수학과 탐구 등 다른 과목이 어렵게 출제될 것이고 결국 이들 부문으로 사교육이 몰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공교육 질을 높이는게 우선

문·이과 통합과정을 개발하면서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절대평가로 바꾸더라도 학생 학습부담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2017학년도부터 필수과목인 한국사는 절대평가제이지만 도입방침이 발표된 이후 사교육은 급격히 늘었다. 최근 교육부가 한국사를 쉽게 출제하겠다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섰지만 학부모들은 여전히 반신반의다.

고입과 대입이 존재하는 한 좋은 학교를 가려고 하는 학생들 간 경쟁은 막을 수 없다. 학습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문·이과 통합과정으로 수능 수학이 인문계 수준으로 쉬워지면 이공계 대학들은 대학과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수학부터 재교육시켜야 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경쟁을 공교육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사교육비를 줄이는 첩경일 수 있다. ‘사교육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각종 규제를 양산하기보다는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더 고민해야 할 때다.

정태웅 지식사회부 차장 redae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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