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원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수시변역 인시제의
배부른 사자는 사냥에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사냥에 나선 사자는 온 정신을 집중하고, 때로는 덩치에 맞지 않게 약은 수를 쓰기도 한다. 사자가 체면 때문에 눈에 뻔히 보이는 정공법적인 사냥을 한다면 늘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경쟁에 임한다. 기껏 어렵게 의사결정을 해 경쟁에 뛰어들고서도, 체면이나 명분에 얽매인 채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승리할 자격이 없다.

세상에 절대 선(善)이 있을 수는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변화·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주역(周易)’의 ‘수시변역(隨時變易)’이라는 말이나, ‘회남자(淮南子)’의 ‘인시제의(因時制宜)’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다.

역사상으로 이런 이치를 어겨서 후대에 비웃음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송나라 양공과 한나라 초기 진여가 대표적이다.

양공은 적이 침략해 오자 전투 준비가 덜 된 적을 습격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하면서 수차례나 공격을 늦추었다가 대패하고, 그로 인해 병사했던 인물이다. 후세에 ‘송나라 양공의 어짊(宋襄之仁)’이라는 말은 이를 비웃는 말이다.

진여는 명장 한신을 맞아 싸우면서 수하의 지략가인 이좌거가 제시한 기습 작전을 채택하지 않고 유자(儒者)를 자처하며 정정당당하게 정면으로 대결하는 전략을 펴다가 대패해 죽음을 맞았던 인물이다.

현대인들은 무한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방식이나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목숨 걸고 싸웠던 그 옛날의 전쟁처럼 하루하루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전투의 가장 큰 목표는 일단 이기는 것이다. 애초에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싸움이 시작된 뒤에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물론 스포츠 정신처럼 정정당당하게 겨뤄야 하는 때도 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적으로 공생해야 하는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그 승패가 나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지 않거나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그런 면에서 현대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이 걸린 중요한 사안마저도 의외로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렇다. 자신들은 그것이 통큰 배려고 소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신념이 부족해 포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권경열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