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모음집 '서울 시'판매 10만부 돌파한 하상욱 씨 "시인이냐고요? 詩로 먹고사는 시팔이일뿐"
“저는 고매한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에요. 그냥 시를 팔아먹고 사는 시(詩)팔이예요. 멋있지 않나요. 시팔이.”

자신을 시인이 아닌 ‘시팔이’라고 소개한, 시집 ‘서울 시’의 저자 하상욱 씨(33·사진)는 최근 출판시장의 핫 아이콘이다. 전자책으로 시작해 지난해 1월과 9월 종이책으로 출간된 ‘서울 시 1, 2’편이 1년도 안 돼 10만부가 팔려나갔다. 2012년 모바일게임 ‘애니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애니팡’이라는 제목으로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듣게 돼’라는 글을 선보이며 ‘애니팡 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사람이 바로 하씨다. 곧이어 나온 4권의 전자책이 3개월 만에 1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종이책 성공 가능성을 예상한 중앙북스에서 러브콜을 보내 출간된 하씨의 책은 지난해 이 출판사의 최고 효자상품이 됐다.

설 명절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서울 양재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출판 ‘대박’과 함께 달라진 그의 생활을 들어봤다. “우선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수입은 그 전보다 몇 배 많아졌고요.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하하.” 전자책 유통사인 리디북스에서 기획자로 근무하던 하씨는 현재 월 10여 차례의 기업체·대학 강의와 방송 출연, 광고 촬영 등으로 어느 스타 작가 못지않은 바쁜 삶을 살고 있다. 2012년 11월 SK텔레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 공모전에 심사위원을 맡았고, 코카콜라·11번가·BMW미니 등의 광고에도 참여했다. KT&G의 담배 ‘타임’ 케이스에 자신의 시를 카피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인터파크에서 최고 신인 작가에게 주는 ‘루키상’도 받았다.

하씨는 500여편의 시 가운데 ‘지옥철’ ‘다 쓴 치약’ ‘효도’ 등 3편을 수작으로 꼽았다. 자신이 추구하는 ‘슬프면서도 웃긴 블랙코미디’를 잘 구현했다고 자평했다. “착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왜 이곳에”(지옥철)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다 쓴 치약) “해야되는데, 해야했는데”(효도).

어떤 상황이든 17음 이내로 표현하는 일본 시문학의 한 장르인 ‘하이쿠(俳句)’와 그 형식이 많이 닮았다는 평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하이쿠라는 말을 책을 내고서야 들었어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저는 제 방식대로 표현할 뿐이고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신 것뿐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물어봐서 ‘나중에 아들 낳으면 ‘하이쿠’라고 이름을 지을까요’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하씨잖아요. 하하.”

현대 도시인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 단 몇 글자로 핵심을 뽑아내는 하씨.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을까. 책을 많이 읽느냐고 물으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저는 책을 잘 안 봅니다. 책은 너무 정제돼 있는 느낌이에요. 책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인터넷 세상에 널려 있는 정제되지 않은 시대의 감성들을 제 방식대로 섭취하고, 걸러서 세상에 다시 내놓는 게 재미있어요.”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