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은 증권부 기자 soul@hankyung.com
[취재수첩] 안 하느니만 못한 실적전망 공시

“작년 초 전망했던 실적과 실제 수치 사이에 차이가 크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외부변수에 따른 실적 악화라는 게 추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건 이해하셔야 합니다.”

대한항공의 한 기업설명(IR) 담당자는 적자 전환한 작년 성적표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어쩔 수 없는 변수들 탓에 자체 예상치가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2월 대한항공은 ‘2013년 한 해 동안 매출 13조700억원과 영업이익 6600억원을 올리겠다’고 공시했다. 공시 내용은 증권사들의 실적 전망치에 반영됐다. 유가 급등과 외국인 관광객 급감이라는 각종 악재 속에서도 증권사들은 대한항공이 지난해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는 전망을 꾸준하게 유지해 왔다. 지난달 28일 대한항공이 내놓은 작년 ‘175억원 영업손실’ 실적이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대한항공뿐만 아니다. KT와 삼성물산은 작년에 전망한 매출과 실제 매출이 1조원 넘게 차이가 났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전망공시를 수정하고도 맞추지 못했다. 작년 10월 정정한 실적전망과 달리 지난달 28일 내놓은 영업손실은 1조원을 넘어섰고, 순손실도 7086억원에 달했다.

현실과 다른 기업들의 실적 전망공시가 미치는 여파는 크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이 실적 전망공시를 참고해 연간실적을 내다보고, 많은 투자자들은 해당 전망치를 참고해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조선·건설·은행 등 일부 업종은 예측신뢰성이 떨어져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적 전망에 대한 공시게재 여부는 상장 기업들의 자유다. 그런데도 고집스럽게 전망공시를 올리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영역 안에서 긍정적인 수치를 제시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려는 속내가 깔려 있다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작년에 내놓은 실적전망과 얼마 전 발표한 작년 실적 간에 괴리가 컸던 한 상장사는 실적 발표 이후 개인투자자들로부터 항의전화가 쏟아져 곤욕을 치렀다고 털어놓았다. 증권사와 개인투자자들에게 되레 혼란을 주는 공시라면 안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윤희은 증권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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