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뛰자! 자본시장 - 전문가 제언 (2)

사람 목숨 좌우하는 의사처럼 금융인도 철저한 직업의식 필요
당국, 규제완화·일벌백계 동시에
황건호 前 금융투자협회장 "단기 업적주의 극복할 시스템 만들어야"

“금융투자업계 후배들로부터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해답을 자꾸 밖에서만 찾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자구노력을 하는 게 먼저입니다. 정부에 기대지 말고 시장의 힘을 스스로 키워야 해요.”

지난달 말 여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63·사진)을 만났다. 2012년 2월까지 8년간 협회를 이끈 그는 2년 전부터 서울대 경영대에서 한국 금융시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황 전 회장은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는데도 자본시장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며 “이번 불황이 경기순환적(cyclical)이 아닌 구조적(structural)이란 게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감기 증상이 다양할 때 종합 감기약을 먹듯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복합적인 처방전을 내려야 한다”며 단기 업적주의를 깰 것을 주문했다. 적지 않은 최고경영자(CEO)들이 임기 중 과시용 업적을 쌓기 위해 역량을 낭비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CEO가 2~3년짜리 단기적인 시각을 갖고 적당히 임기를 때우고 있는데 그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겠느냐”며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대하는 등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도 확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인의 소명의식을 놓고선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할 뿐 전문가로서 열정을 불태우는 리더십을 찾기 어려워요. 의사가 사람 목숨을 좌우하는 것처럼 금융인도 철저한 직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자산운용사 한 곳이 잘못해도 수많은 투자자의 인생이 확 바뀔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동양증권의 채권 불완전판매 논란에 이어 개인정보 유출 파문이 확산되는 데 대해 황 전 회장은 기업성과 공공성의 조화라는 논리를 폈다. 그는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에 대해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시장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선 일벌백계의 원칙도 꼭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한국에선 이를 빌미로 한 금융규제가 과도하다는 게 황 전 회장의 인식이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이 2008년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규제를 강화한 게 사실이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많았던 규제를 금융위기를 계기로 더 높이는 꼴”이라며 “미시적 규제에 대해선 과감하게 풀자는 합의가 깨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황 전 회장은 새 정부 들어 창조경제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금융산업은 소외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금융이야말로 창조경제의 핵심 동력인데 정부의 우선 정책순위에서 자꾸 외면당하는 분위기”라며 “국내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 투자하면 그 돈이 기업을 일으키고 결과적으로 투자자가 고수익을 얻는 선순환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시장 개방을 통해 자본시장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황 전 회장은 “한국은 경제 개방을 통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나라”라며 “금융시장 문을 더욱 열어 최종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이어 “세계사를 주도한 쪽은 항상 각박한 환경을 극복하면서 거대한 성과를 이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자본시장이 이번 난관을 잘 헤치면 한 단계 대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조재길 /사진=신경훈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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