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방식으로 설계 가능…금융사 관련상품에 관심
바뀌는 민법 개정안…머릿속 복잡해진 자산가들, '유언 신탁'으로 상속분쟁 피하고 절세까지

#1. 50억원대 자산가인 박모씨(68)는 최근 확정된 민법 개정안이 상속 재산의 50%를 배우자에게 우선 배정키로 한 사실을 알고 걱정이 생겼다. 배우자 선취분에 대한 상속세 부과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과세 결정 시 향후 아내가 사망할 경우까지 감안하면 아내와 자식이 이중으로 상속세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를 찾아 아내에게 20%, 나머지 80%는 자식에게 상속하는 것이 세금을 가장 덜 내는 방법이라는 조언을 듣고 유언의 효력이 있는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맺었다.

#2. 70억원대 재산을 가진 이모씨(70)의 자식들은 민법 개정안에 따라 10년 전 아버지와 재혼한 새어머니에게 재산의 상당 부분이 상속될 가능성이 커져 걱정이다. 재혼 후 아버지 사업이 급격히 커지면서 새어머니 몫이 수십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서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새어머니 몫을 줄이는 방향으로 은행과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맺도록 설득 중이다.

배우자에게 재산의 50%를 우선 상속하도록 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법무부 산하 특별분과위원회에서 확정되면서 자산가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있다. 홀로 남게 되는 배우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자는 좋은 취지이지만, 세금 부담이 가중되거나 가족 간 분쟁을 야기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언대용신탁으로 ‘사후 설계’

전문가들은 세금 부담 가중이나 가족 간 분쟁이 우려되는 자산가의 경우 금융회사의 유언대용신탁을 활용하면 좋다고 권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금융회사에 예금 채권 부동산 등 재산운용을 맡기는 걸 말한다. 피상속인이 사망하면 계약에 따라 금융회사가 재산 상속 절차를 진행해 준다.

유언대용신탁은 신탁법에 따라 생전에 금융회사와 맺는 계약이기 때문에 피상속자의 사망 후 적용되는 민법상 상속 재산 분할 비율(배우자에게 50% 먼저 할당한 뒤 배우자와 자녀가 1.5 대 1 비율로 배분)을 적용받지 않는다.

성격이 비슷한 유언장은 자필증서나 녹음 등의 방식으로 작성, 공증을 받아 상속 재산 수증자를 정한다. 피상속인 사망 후 공증받은 유언장에 따라 상속이 집행된다. 하지만 유언장은 피상속인의 사후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민법상 배우자 선취분(50%)이 적용된다.

유언장과 유언대용신탁은 중간에 얼마든지 상속자와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만 유언장은 자신의 재산을 상속할 사람만 정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유언대용신탁은 상속받은 사람의 사망 후 재산 상속까지 정할 수 있다. 우선 상속자인 A가 사망하면 B에게, B가 사망하면 C에게 준다는 식으로 자산 대물림 설계가 가능하다.

○상속법 개정에도 탄력 대응

유언대용신탁은 민법 개정안에 따른 가족 간 분쟁 방지 및 절세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배정식 하나은행 신탁부 팀장은 “피상속인이 사망 전에 가족과 협의를 거쳐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맺으면 준비 없는 사망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세금 문제, 가족 간 법정 다툼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사 중에선 하나·국민·신한은행, 삼성·한화생명, 우리투자·하나대투증권 등이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2010년 이 상품을 처음 출시한 하나은행은 지난해 말까지 누적 계약 금액이 2176억원에 이른다. 고객들은 계약 시 상담·설계비용 등 수수료(총 가입금액의 0.5% 안팎)를 내야 한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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