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1년내 지속…기업들 결제통화 분산 등 위험대비
소재·부품 등 중간재 수입절감 긍정적 측면도

30일 원·엔 환율이 5년여 만에 900원대로 떨어져 심리적 저지선인 1,000원 선이 붕괴됨에 따라 향후 수출 경쟁력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내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개장 직후 100엔당 999.62원까지 하락했다.

전자·자동차·조선 등 주요 제조업체들은 그러나 엔저 현상이 이미 1년 가까이 지속된데다 대일 수입의존도가 큰 소재·부품 부문에선 수출 경쟁력에 유리한 측면도 없지 않아 전체적인 여파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나마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직접적으로 경합하는 3대 부문인 전자·기계·자동차 업계가 다소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환율 등락에 따라 수출 가격 경쟁력과 수입 부품·설비·원자재 구매비용에서 플러스·마이너스 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이어서 환율에 대한 단기적 대응보다는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엔화 외에도 달러·유로·위안화 등 다양한 통화로 결제하기 때문에 특정 통화가 오르면 다른 통화는 내리는 위험 분산 효과도 있다"며 "들어오고 나가는 통화 매칭을 통해 환율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계도 엔화 약세로 인해 경영실적이 급격히 악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일본 완성차 메이커들과의 직접적인 경쟁에서는 엔저로 인해 일본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낳고 있는 만큼 적잖은 우려를 표시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업체들은 환율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한편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 향상과 '제값 받기 정책'을 등을 적극 추진하면서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조선업계는 엔저의 영향을 사실상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엔저 현상이 두드러진 올해 글로벌 수주 시장에서 일본 조선사들을 넉넉히 따돌리며 우위를 점한 점만 놓고 봐도 원·엔 환율이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국내와 일본 조선사들이 주력으로 수주하는 선종이 다른 점과 기술력이 집약된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국내 업체들이 일본 조선사에 비해 앞서 있는 점 등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도 기본적으로 원·엔 환율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한창헌 정책지원본부장은 "건설업종은 기본적으로 내수 산업이기 때문에 원·엔 환율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자재의 경우도 대부분 중국·유럽 쪽에서 많이 들여오기 때문에 일본 변수는 작은 편"이라며 "다만 환율 하락으로 국민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으면 건설업종에도 좋을 것은 없다는 인식"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KIET)의 강두용 동향분석실장은 "추가적인 엔 약세가 이어지면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현재로서는 여파가 크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최근 기업 설문조사에서도 엔저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받는 업체의 비중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대일 수출의 경우 지난 1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면서 "농수산식품 수출의 경우 일본 비중이 높지만 중국 등으로 점차 다변화하는 추세여서 엔저 여파를 줄여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우리나라의 대일 수출은 지난 2월부터 10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오히려 중간재 수입을 일본에 의존하는 일부 수출 기업의 경우 단기적으로 엔저의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정밀기기 등은 수입비용 절감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옥철 현윤경 안희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