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국회가 졸속 법안들을 대거 쏟아낼 태세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현안인 법안들을 일괄 타결하겠다며 막판 타협을 벌이는 탓이다. 여야가 정기국회 100일을 허송세월하고 임시변통으로 임시국회를 열고 있지만 시간을 까먹어 불과 이틀 뒤면 해가 넘어간다. 30일의 새해 예산안 처리조차 가물가물하다. 주요 법안을 연계해 처리하자는 패키지 딜 따위의 말들이 튀어나온다.

흥정으로 입법하겠다는 발상이 어처구니없다. 양도세 중과 폐지와 전월세 상한제 도입, 취득세 영구인하와 지방세율 6%포인트 일괄 인상을 맞바꾸자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소득세 최고세율(38%) 과표구간 하향과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도 흥정 대상이다. 심지어 민주당은 국가정보원 개혁법안과 예산부수법안 연계 처리를 주장한다. 하나하나가 국민생활과 안녕질서에 큰 파장을 몰고 올 법안이다. 아무 관련없는 법안들을 이처럼 멋대로 연계해 거래하려는 것은 가위질하는 엿장수도 혀를 내두를 일이다.

계류 중인 법안이 무려 6700여개나 된다. 주요 상임위마다 수백개씩 법안이 쌓여 있다. 법안을 읽을 시간도 모자랐을 터이니 심의가 제대로 됐을 리 없다. 전세기간 확대가 전셋값만 폭등시켰던 기억이 생생한데도 전세가 상한제, 전세기간 확대 등이 여야 간 협상대상이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더구나 연말 국회가 하루에 수십개, 수백개 법안을 찍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개악이 이뤄지는지 가려낼 길조차 없다. 악법들이 쏟아져나올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가 법안 100개를 처리하는 것보다 악법을 한 개라도 만들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경제 법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국회의원들은 입법을 권리로만 알 뿐, 책임을 져야하는 것인 줄은 모른다. 민주당이 멋대로 법안을 연계하는 것도 문제지만, 새누리당이 시간이 없다며 엉터리 법안에 동조하는 것도 입법권 남용일 뿐이다. 안 되는 법안, 하지 말아야 하는 법안은 나와서는 안 된다. 지금 무더기로 법안들을 해치워 무엇을 어쩌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