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귤'도 '탱자'만드는 부동산 규제
‘꽝~’하는 폭발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그곳에서 한 아이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현직 형사의 아들이다. 건설회사가 부실공사를 감추기 위해 폭탄테러로 위장한 탓이다. 적개심에 불탄 형사는 위장 취업해 날림공사를 일삼는 악덕 건설업자와 맞서 싸운다.

최근 방영된 MBC 주말드라마 ‘스캔들’의 줄거리다. 이 소설 같은 드라마는 방송을 타자마자 큰 인기를 모았다. 건설업을 둘러싼 비리를 드라마틱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건설업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비자금’ ‘담합’ ‘부실시공’ 등을 떠올리게 됐다.

'동네북' 전락한 건설사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건설사들은 죽을 맛이다. 국내에서 ‘동네북’으로 전락한 것은 그나마 감내할 수 있지만, 그 여파가 해외시장에도 미치기 때문이다. 건설비리를 다룬 국내 기사는 일본 등 경쟁국 건설사의 손을 거쳐 투서와 함께 그날 바로 해외 발주처에 들어간다. 세계 건설시장 점유율 6위, 중동지역 매출 2년 연속 세계 1위 등 그 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에 금이 갈 정도의 파장이다.

해외에서 잘나가는 건설사들이 국내에선 ‘열등생’으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상당수 전문가들은 ‘반(反)시장적 규제를 양산하는 정치권’을 꼽는다. “해외사업은 정치권 간섭을 안 받아 그나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김종진 전주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해석도 나온다.

국내 건설시장엔 비(非)경제적이고 반시장적인 규제가 적지 않다. 예산 절감을 이유로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엔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를 선정하는 최저가낙찰제를 적용한다. 저가 수주와 부실공사 등으로 오히려 예산낭비가 심해져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이미 포기한 제도다. 건설사들이 지방공사를 따내려면 공사물량의 30~40%는 해당 지역업체에 줘야 한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위한다는 명목이다.

판치는 반시장적인 규제

컨소시엄을 형성하는데 지역 안배가 우선이고, 기술력은 뒷전이다. 단 한 건의 위법행위를 해도 다중처벌을 받는 일이 다반사다. 건설산업기본법, 국가·지방계약법, 하도급법, 공정거래법 등에 따라 과징금, 입찰제한, 사전심사(PQ) 감점 등의 불이익을 한꺼번에 당한다.

주택 분야는 더 심하다. 세계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분양가상한제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등 온갖 규제가 판을 친다. 수시로 뒤바뀌는 제도는 정부 관계자도 따라잡기 벅찰 정도다. “투기를 잡겠다”던 노무현 정부는 무려 40여차례, “주택시장을 살리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20여차례나 ‘대책’을 내놨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냉·온탕 정책을 쏟아냈다. 상황이 급변하니 건설사들은 경쟁력 강화는커녕 생존하기에도 급급한 처지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각국의 건설사들은 원자력, 스마트 고속도로 등 첨단 분야로 기술력을 키워가고 있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외국 귤(외국 건설사)은 한라봉을 거쳐 황금향으로 진화하는 마당에 한국 귤(국내 건설사)은 반시장적인 규제 탓에 오히려 탱자로 퇴보하고 있다”(최삼규 대한건설협회장)는 업계 원로의 하소연을 정치권은 더 늦기 전에 새겨들어야 한다.

김태철 건설부동산부 차장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