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을 이유로 식품 제조업체들이 어쩔 수 없이 회수해 폐기하는 제품이 연간 6000억원 규모나 된다는 한경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 가정에서 버리는 식품까지 포함하면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자원낭비는 물론 소비자 부담도 늘어난다. 물론 판매시한을 의미하는 유통기한과 먹을 수 있는 기한, 즉 소비기한은 전혀 다르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하는 유통기한은 먹을 수 있는 기한을 뜻하는 소비기한에 비해 너무 짧다. 식용유는 5년까지 먹을 수 있지만 유통기한은 2년이고, 소비기한이 8개월인 라면은 유통기한이 5개월이다. 소비기한이 각각 90일과 45일인 두부와 우유는 유통기한이 고작 14일이다. 식약처는 냉장보관을 하지 않고, 개봉해서 바로 먹지 않고 놔두는 경우까지 고려해 유통기한을 정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냉장보관하면 언제까지 먹어도 된다는 표시를 따로 하지 않는 이상, 소비자들은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알 도리가 없다. 유통기한이 지나면 상해서 못 먹는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56%나 된다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식품업체들이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지난 제품을 영·유아원 양로원 등에 무상 기부하는 것을 두고 못 먹는 식품을 아이와 노인들에게 먹인다고 공격하는 일부 빗나간 공세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소비자 보호를 위해 유통기한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이런 규제가 오히려 식품에 대한 불신과 공포감을 키운다. 판매기한을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게다가 한국은 판매기한 위반에 대해 정부가 영업정지 또는 징역형까지 내릴 수 있게 징벌하는 유일한 국가다. 정부는 그나마 일부 제품에 대해 소비기한을 병기토록 했던 조치도 올 3월 폐지해버렸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유통기한이 절반 이상 지난 우유 등을 제조업체가 대리점에 강제 공급하지 못하게 막는 모범거래기준까지 만들었다. 새로운 법규 위반 업체들이 줄줄이 나오게 생겼다. 지나친 규제는 범법자를 만들어 낼 뿐이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