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정부의 '공짜 집 정책'이 미국 금융위기 불씨였다
“미국의 주택 가격은 1990년대 중반까지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말부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죠. 1997년부터 거품이 최고조에 달한 2006년까지 10년간 두 배 이상 폭등했습니다. 인플레이션율이 1%가량인 나라에서 집값이 1년에 15%씩 10년 연속 오르는 건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상승세였습니다. 그러다 집값이 폭락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가을학기 일곱 번째 시간. ‘세계 금융위기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들’ 강의를 맡은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5년을 맞아 금융위기의 원인을 다시 짚어보고 현재의 세계 경제를 조명해 보겠다”며 강의를 시작했다.

○‘소득·직업·자산’이 없어도 주택 구매 가능?

경제학에서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은 수요가 늘어나거나 공급이 줄어드는 것이다. 주택 수요는 인구, 가구 수, 소득 증가 등으로 결정되고 공급은 신규 주택 수를 따라간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수요 측면에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인구수 정점은 2018년으로 볼 수 있고요. 2인 이하 가구가 늘면서 전체 가구 수도 증가하고 있지만, 4인 이상 가구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대형 주택 수요가 감소한다는 얘기죠. 국민 소득이 급격히 늘어날 일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집값 급등기의 미국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수요 측면이나 주택 공급에서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다만 신규 구매자만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은 경제학자는 저금리 정책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일반적인 분석은 이렇다. 집값 급등기 미국의 대출 이자는 신용 등급이 좋으면 연 2%, 나쁘면 연 3% 수준이었다. 30년 만기 모기지(주택담보) 대출을 받아도 부담이 되지 않아 집을 사는 사람이 많았다.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자 이자 부담이 커진 사람들이 급하게 주택을 시장에 내놨고, 그에 따라 집값이 폭락했다는 것이다.

“이 분석에는 핵심이 많이 빠져 있습니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미국의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 대통령은 국민의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을 폈습니다. 어느 정부나 목표로 삼는 정책이긴 하죠. 클린턴은 주택 정책으로 ‘소득·직업·자산 부재(no income, no job, no asset)’를 내세웠습니다. 부동산 회사와 함께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 온 사람에게 무조건 집값의 110%를 대출해 주도록 했습니다. 부동산 회사에 주는 수수료(집값의 3%)와 도심에서 교외로 이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자동차 구입 가격까지 포함해준 것이었습니다.”

클린턴 정부의 '공짜 집 정책'이 미국 금융위기 불씨였다
○주택가격 6개월간 60% 폭락


신규 주택 구입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집값이 오르는 만큼 이자 부담은 점점 줄어들었다. 연체가 발생해도 담보로 잡은 주택을 비싼 값에 팔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은행은 대출을 늘려갔다. 클린턴 임기 말에는 모기지대출을 받으면 5년간 원금과 이자 상환을 유예해주는 상품도 등장했다.

“집을 산 이후 5년까지 돈을 한 푼도 안 내도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4년 반 정도 살고 판 다음 또 다른 집을 사서 4년 반 살고…’ 하는 식으로 계속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클린턴의 뒤를 이은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 1년 뒤인 2002년 ‘공짜 집 정책’을 폐기했지만 관성이 붙은 거품은 계속 커져갔습니다.”

2004년부터 사람들이 4년 넘게 공짜로 살던 집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대만큼 팔리지가 않았다. 새집이 계속 공급되는 마당에 5년 가까이 사람이 산 집을 사려는 수요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무일푼으로 집을 샀던 사람들은 은행 빚을 갚으려고 서두르느라 집값을 계속 깎아서 시장에 내놨다.

“경제학자들은 이자율이 올라서 집값이 폭락했다고 설명하죠. 실제 이자율은 연 3%에서 5%로 올랐습니다. 두 배 가까이 오르긴 했지만 6개월간 60% 폭락하는 충격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5대 투자은행의 몰락

부동산 거품 붕괴는 대출을 기반으로 설계한 파생상품으로 장사하던 투자은행(IB)과 헤지펀드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미국 5대 IB 가운데 베어스턴스는 JP모간체이스에,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됐고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5대 IB가 사라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사 부채비율이 몇 %면 위험하다고 합니까? 300%만 돼도 너무 높다고 하죠. 리먼브러더스는 1800%였습니다. 분식회계로 500억달러를 부채에서 뺐는데도 그 정도였습니다. 12월31일 기준으로 재무제표를 만들지 않습니까. 31일 밤 11시에 자산을 팔아서 부채를 갚고 재무제표를 작성합니다. 1월1일이 시작하자마자 돈을 빌려서 그 자산을 삽니다. 메릴린치는 부채비율이 2300%에 달했습니다.”

공화당 정부는 무너져가는 IB에 대한 구제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2009년 출범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정부는 7000억달러를 연 1% 금리로 대출해주고 3000억달러의 지급보증을 서는 등 1조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야당인 공화당은 지속적으로 구제금융을 반대하고, 여당인 민주당은 찬성했다는 점입니다. 보수당인 공화당은 IB가 지지 기반이었는데도 반대한 것이죠. 철저한 자본주의 원칙에 따른 판단이었습니다. ‘당신이 잘해서 돈을 벌면 세금 빼고 모두 당신 몫이다. 잘 못해서 망하면 모두 당신 책임이다’라는 겁니다. 반면 민주당은 ‘잘나갈 때 세금보다 더 내놓아라. 대신 망하면 도와주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합법적인’ 골드만삭스 스캔들

두고두고 논란이 지속됐던 ‘골드만삭스 스캔들’도 이 시기에 나왔다. 골드만삭스는 2008년 세금을 1400만달러 냈다. 순이익의 1% 수준이었다.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받았지만 조세피난처를 잘 활용했기 때문에 모두 합법으로 결론이 났다. 2009년 초에는 공적자금 100억달러와 파생상품에 가입해 놓은 보험료 130억달러, 정부보증 대출 200억달러를 받아 파산을 면했다.

골드만삭스는 또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인 2008년 말 결산기를 11월에서 12월로 바꿨다. 그리고 12월 한 달에 비용을 몰아넣고 16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새로 결산기를 시작한 2009년 1분기(1~3월)에 이익을 몰아넣어 18억달러라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했다. 곧바로 100억달러 규모로 증자해 공적자금을 모두 갚아버렸다.

“마침 주가까지 많이 빠진 상황이어서 손쉽게 증자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합법적인 작업이었지만, 많은 국민의 분노를 샀습니다. 게다가 당시 골드만삭스 홍보담당자가 한 언론사 기자에게 ‘당신들에게 몇십만달러가 큰돈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푼돈이다. 푼돈 받으려고 비겁한 짓을 하지는 않는다’고 해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헨리 폴슨 재무장관, 닐 캐시카리 재무부 차관보 등 주요 관료들이 골드만삭스 출신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골드만삭스는 오바마 정부에서 승승장구합니다.”

○“유럽 부실은 아직도 숨겨져 있다”


단기매매증권은 단시간에 매매할 수 있는 유가증권(주식·채권·파생상품 등)으로서 시가로 가치를 평가해 재무제표에 반영한다. 반면 (장기)매도가능증권은 당분간 매매할 계획이 없는 유가증권이기 때문에 시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금융위기 발발 전까지는 한쪽에 표시하면 다른 쪽으로 이동하지 못하는 ‘금융자산 재분류 금지 원칙’이 적용됐다.

“금융위기 발발 이전에 IB들은 파생상품을 주로 단기매매증권으로 분류했습니다. 평가이익이 컸으니 보너스도 엄청나게 받았죠. 금융위기가 터지고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할 처지가 되자 유럽의 IB들은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했습니다. 미국 IB들은 구제금융을 받았으니 회계기준을 변경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유럽에서 먼저 금융자산 재분류 금지를 해제해줬습니다. 덕분에 유럽의 은행들은 부실을 상당 부분 숨길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비해 유럽의 재정위기가 지금도 지속되는 이유 중에는 이런 부실이 아직도 많이 숨겨져 있는 탓도 있습니다.”

○“유럽 재정 불안은 당분간 지속”

최 교수는 이어 경제는 국가별로 분리돼 있지만 화폐는 ‘유로’로 묶인 유럽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국가가 독자 통화를 갖고 있을 때는 그 나라의 경제력이 떨어지면 통화가 약세로 전환하면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생깁니다. 환율이 올라가면서 수출이 늘고 관광 수입도 늘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유로화의 경우는 30여개 유로존 국가의 평균이 유로화의 가치입니다. 유로존 1위인 독일은 실제 경쟁력보다 유로가 20%가량 저평가돼 있는 반면, 그리스는 20% 고평가돼 있습니다. 독일은 마르크를 쓸 때보다 벤츠나 BMW를 20% 싸게 팔 수 있는 겁니다. 유로존에 묶여 있는 상황이 독일에는 큰 이익이기 때문에 유로존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를 시작으로 하나둘씩 떨어져나가면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를 도와주려고 하는데, 국민들이 반대합니다. 독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 때문에 독일은 그리스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힘이 있으면서도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겁니다. 유럽의 불황은 이런 상황 때문에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