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규제에 맞서는 공직자 보고싶다
미국 뉴욕의 할렘가는 19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주택가였다. 슬럼으로 바뀐 것은 1945년부터다. 2차대전이 끝나자 물가와 집세가 뛰기 시작했다. 뉴욕의 정치인들은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해 월세 인상폭을 제한하고 집주인이 세입자를 마음대로 내보내지 못하도록 했다. 그 결과는 엉뚱하게도 집주인들이 주택 수리를 외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값싼 임대료로는 수리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집은 낡기 시작했고 중산층은 떠나갔다. 월세가 싸다 보니 새로 집을 짓겠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빈자리는 저소득층과 범죄자들이 메웠다. 빈민촌이자 우범지대라는 낙인은 규제를 완화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선의의 규제도 부작용 많아

덴마크 정부는 2011년 10월 비만세를 채택했다. 버터 고기 피자 등 지방이 많이 포함된 식품에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덴마크 사람들은 국경 근처 독일 슈퍼마켓으로 몰려갔다. 기름값을 감안해도 집 근처에서 사는 것보다 싸기 때문이다. 덴마크 국세청은 1년 만에 비만세를 폐지했다.

정책은 대체로 선의(善意)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위의 두 사례처럼 정책의 결과는 꼭 의도한 대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기업 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의 행동을 인위적으로 어찌하려는 규제가 정책의 골자일 때 많이 발생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본지가 10월30일자 1면에 ‘대기업, 두부 만들게 해달라…콩 농가의 하소연’이란 제목으로 보도한 것도 같은 사례다. 동반성장위원회가 2011년 11월 국산 콩을 원료로 하는 두부를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한 이후 콩이 팔리지 않는다고 콩 생산농가가 들고 일어났다. 사업을 확장할 수 없게 된 대기업들이 의욕을 보이지 않고, 중소기업 제품은 기대와 달리 잘 안 팔리면서 콩 수매량이 감소한 것이다.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규제도 마찬가지다. 국회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월 2회 의무휴업을 강제한 유통산업발전법을 지난해 1월 통과시키고 상반기부터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에 들어갔다. 전통시장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통시장 매출은 4.3% 줄었다.

월마트 유치한 워싱턴 시장

최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도 유통업계 규제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월마트가 워싱턴에 6곳의 점포를 내려고 하자 시 의회가 매출 10억달러 이상의 유통업체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8.25달러에서 50%나 오른 12.5달러를 내라는 내용의 법을 통과시켰다. 월마트 입점을 막기 위한 조치였고 중소상인들은 환영했다. 임금 부담을 느낀 월마트는 점포 설립계획의 철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비자들과 시민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값싼 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의 이해관계와 일자리 창출은 어디 갔느냐는 것이다. 빈센트 그레이 워싱턴 시장은 소비자와 시민의 편에 섰다. 시 의회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규제의 부작용과 위험은 두말할 것도 없다. 임대료 규제가 주택시장을 왜곡한다는 것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좌파건 우파건 90% 이상 동의한다. 필요한 것은 행동이다. 부작용을 양산하는 규제에 맞서는 그레이 시장이 한국에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박준동 생활경제부 차장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