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IT 맡을 中企도 없는데 SW산업진흥법에 손발 '꽁꽁'
국방·전력 등 국가안보 관련 '예외인정제도' 유명무실
대기업 빠진 공공조달시장 결국 외국계 기업만 수혜
< 보안 걱정되는 한전 전산망 > 한국전력은 자회사인 한전KDN에서 전력계통 정보기술(IT) 서비스를 받아왔으나 지난 1월부터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에 따라 제한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전 전산센터 내부 모습. 한국전력 제공

< 보안 걱정되는 한전 전산망 > 한국전력은 자회사인 한전KDN에서 전력계통 정보기술(IT) 서비스를 받아왔으나 지난 1월부터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에 따라 제한을 받고 있다. 사진은 한전 전산센터 내부 모습. 한국전력 제공

한전KDN은 한국 전력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전담하기 위해 1992년 한전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런 회사가 한전의 일감을 따지 못하게 된 것은 경제민주화 시대가 부려놓은 또 하나의 에피소드다. 소프트웨어 업계에 대기업의 진입을 차단해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취지의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이 그 진원지다. 한전KDN은 법 제정을 전후로 수차례에 걸쳐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전KDN 관계자는 “법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국회나 관련 부처에 법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했지만 ‘일부 사업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며 “전문성이 필요한 전력 IT 분야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해킹당하면 누가 책임지나”

[공공조달시장 '파행'] 수주 씨 마른 한전KDN…1800개 중소 협력사도 '빈사 상태'

한전KDN이 일감을 따지 못하고 경영실적 악화가 불보듯 뻔해지면서 한전 주변에서는 한전-한전KDN 합병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일감을 내놓을 바에야 차라리 한전이 흡수해 SI(시스템통합)사업을 내부화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시행의 여파는 한전 측의 발주 축소로 나타나고 있다. 한전과 한전KDN 측은 중소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 전력SI 사업에 뛰어들 경우 전력 안정성 문제와 해킹, 정보보안 등의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특히 국가 기반 시설인 발전소 등에 대한 보안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엄격한 신분 검증을 거치지 않은 중소기업이나 외국계 기업 직원들이 수시로 발전소나 송변전 시설에 드나들게 될 경우 보안성이 취약해진다는 것. 주요 시스템에 대한 해킹 문제도 나온다. 사익을 취하기 위해 데이터를 몰래 빼가거나, 악성 코드를 심는 등의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소프트웨어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력 IT 산업의 경우 전문성이 필요해 일반 기업이 하려고 해도 지식을 체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당장 전력 분야에 뛰어들 수 있는 기업은 일부 대형 외국계 기업을 제외하고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사들도 죽을 맛

정부는 국방·전력 등 국가안보 등과 관련된 사업에 대해 대기업 참여를 허락하는 ‘예외인정사업’ 신청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실상 효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해와 지난 9월까지 예외 사업 신청은 총 47건. 이 가운데 16건(34%)만 미래창조과학부 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더욱이 연간 1000여건에 달하는 전력 분야 입찰을 일일이 예외 인정 사업으로 신청을 하기도 힘들다. 한전KDN은 올해 50~60건에 대해 미래부에 예외인정사업 신청을 했지만 4건만 적격 판정을 받아 입찰을 기다리고 있다.

한전KDN의 사업 참여가 제한되면서 1800여개에 달하는 중소협력업체도 ‘개점휴업’ 상태다. 구성회 정보산업협동조합 전무는 “협회에 소속된 한전KDN의 협력사가 40여개 정도인데 협력사 발주가 이뤄지지 않아 하도급사들도 일거리가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한전KDN은 전력 IT 분야 외에 다른 분야에 진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명박 정부 당시 마련된 공공기관 지침에 따라 전력과 관계되는 IT 업무만 해야하기 때문이다. 한전KDN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가 비전력 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지침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한전 사업마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며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업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글로벌 기업들과 직접 경쟁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으로 인해 드러난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외국계 기업들의 잇따른 시장 잠식이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4일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당초 법안 취지는 대기업 계열 IT 서비스 회사의 공공시장 참여를 제한해 중견·중소 IT서비스 업체를 키우자는 것 아니었느냐”며 “하지만 현실은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글로벌 공룡기업과 경쟁하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월 국민연금공단 데이터센터 설계사업, 지난 7월 한국고용정보원 데이터센터 이전 컨설팅사업을 수주한 기업은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기업이 아닌 한국 IBM이다.

업계에서는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대기업 계열 IT서비스 회사 임원은 “대기업 IT서비스 업체가 포화된 국내 시장 시스템통합(SI) 사업에 매몰되지 않고 신사업으로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고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것은 맞는다”면서도 “결론적으로 외국계 업체에 특혜를 줄 거라면 왜 국내 시장에서 밀어냈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공공시장 전체적으로 중소기업이 받은 혜택도 미미한 실정이다. 조달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공공 조달 시장에서 중소기업의 물품 및 서비스가 차지한 규모는 9조5691억원(80.2%)에 달했다. 2010년(75.2%)-2011년(77.6%)-2012년(76.6%)까지 추세를 보면 꾸준히 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시설공사부문의 중소기업 비율은 계속 줄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은 전체 시설공사액의 49.7%(7조1299억원)를 수주했는데 올해는 그 비율이 43.8%(4조7612억원)로 감소했다. 조달청은 중소기업 시설공사 부문은 수주 능력에 따라 기업을 1~12등급으로 나눠 공사를 진행하는 데 올해 상반기에는 대형 공사 물량이 집중되면서 대기업 수주 물량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우섭/김보영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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