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코치
세계 스마트 흐름 놓치고 무분별한 아웃소싱에 추락

비상장전환하고 기업용 SW회사 변신 시도
캐릭터 사업·영화 등 미활용 역량 찾아 성공한 마블처럼 숨은 역량부터 찾아야
[비즈&라이프] IBM 따라하려는 DELL, 차라리 '마블' 벤치마킹하라

[비즈&라이프] IBM 따라하려는 DELL, 차라리 '마블' 벤치마킹하라

미국 PC 업체 델(Dell)은 1990년대 정보기술(IT) 분야 혁신의 상징이었다.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며 소비자와 제조회사를 직접 연결한 유통 혁신을 통해 2000년대 중반까지 거의 10년간 세계 PC 업계 1위로 군림했다. 그러나 델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이 회사 역시 스마트 열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PC 시장은 갈수록 쪼그라드는 추세다. 여기다 중국 레노버가 급부상하면서 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올초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마이클 델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함께 상장주식을 사들여 25년 만에 비상장 회사로 전환하기로 했다. 극단적인 혁신 없이는 생존이 불투명하다고 보고, 이사회 통제 없이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다음달 중순 이전에 주식 매입이 마무리되면 델 CEO는 전체 지분의 75%를 확보하게 된다.

델 CEO는 주력 분야를 PC에서 기업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PC사업을 레노버에 넘기며 IT서비스 회사로 변신에 성공한 IBM의 길을 벤치마킹해 가겠다는 것이다.

코칭포인트1 - 새로운 변신에 성공하려면 회사의 숨은 역량부터 찾아라

핵심 사업에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 사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경영자 입장에서 가장 까다로운 판단이다.

핵심 사업의 성장 잠재력을 오판하면, 아까운 자원을 주력사업보다 성공 가능성이 훨씬 낮은 비관련 사업에 허비할 수 있다. 반면에 핵심 사업의 경쟁력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너무 오래 머뭇거리면 재기의 기회를 잃고 추락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현재 델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다. 델의 핵심인 PC 사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미 한계에 직면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성장으로 PC 시장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 게다가 델의 경쟁력이었던 직접 판매방식(direct model)에 의한 원가 우위가 레노버, 에이서, 에이수스 등 신흥 경쟁자들에게 압도당하고 있다. 사실 낮은 원가에 기반을 둔 저가 전략의 가장 큰 약점은 더 저렴한 경쟁자가 등장하면 바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델에 남은 선택은 PC 사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때도 경영자의 신중한 검토와 판단이 필요하다. 많은 경영자가 신성장 동력을 찾는다며 마구잡이로 기업을 인수해 실패한 경우가 허다하다.

델은 2006년 고성능 PC를 생산하는 에일리언웨어를 필두로 2009년 IT서비스 기업인 페로시스템스(Perot Systems)를 39억달러에 인수하는 등 적지 않은 기업을 사들였다. 하지만 여전히 PC 사업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고, 이를 대신할 확실한 새 사업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델이 동종 업종에서 성공적으로 핵심 사업을 바꾼 IBM, 애플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대단한 기업인수가 아니라, 기업 내부에 존재하는 미활용 역량을 찾는 일일 것이다. IBM과 애플이 각각 IT 서비스와 MP3 플레이어 분야로 핵심 사업을 재정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부에 축적된 역량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고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영화화된 마블의 대표캐릭터

영화화된 마블의 대표캐릭터

물론 이들도 크고 작은 기업들을 인수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숨은 역량을 활용해 신사업을 펼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들에 불과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미활용 역량을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미국 마블이 주력이던 만화책 사업에서 벗어나 영화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자신들이 보유한 수많은 만화 캐릭터와 흥미로운 스토리의 새로운 활용도를 늦게나마 찾았기 때문이었다. 과연 델이 가지고 있는 숨은 역량은 무엇일까.

코칭포인트2 - 핵심 경쟁력은 아무리 어려워도 아웃소싱해선 안된다

[비즈&라이프] IBM 따라하려는 DELL, 차라리 '마블' 벤치마킹하라

델의 성공과 추락은 재무관리 측면에서도 시사점이 많다. 델은 PC 산업에 주문생산(build-to-order) 개념을 도입해 외상매출과 재고를 대폭 줄였다. 결과적으로 순운전자본을 줄여 자본비용을 낮추는 효과를 보았다. 단기간에 시장 1위 자리를 꿰찬 가격경쟁력의 배경이다.

하지만 델은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부품 구매뿐 아니라 대부분의 제조 공정을 아웃소싱을 통해 해결했다. 단기적으로 이는 재무성과를 좋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장기적으론 기업경쟁력을 하청 업체에 뺏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청 업체였던 에이수스 등이 더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잠식하자 다른 경쟁 우위가 없던 델로서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델의 사례는 일시적 가격경쟁력 유지를 위한 아웃소싱의 폐단을 드러낸 것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핵심 경쟁력까지 아웃소싱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델의 추락은 기존의 혁신에 안주한 채 새로운 혁신을 등한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직접 판매 모델의 성공에 기댄 채 비용절감만을 강조한 나머지, IT 발전을 고려한 신제품 개발이나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협력사 및 소비자와의 지속적 의사소통 구조가 없었다. 이는 지속적인 혁신의 부재로 이어졌다.(→델이 추락한 결정적 이유)

창업자 마이클 델은 IBM의 변신과 비슷한 기업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델의 변신이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에 집중해야 한다.

기존의 유통 관행을 깨며 단숨에 업계 1위에 올랐던 것처럼, 새로운 사업 영역에서 어떤 혁신을 보여줄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변화의 과정이 일시적인 충격 요법이 아닌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질서 있는 변화를 꾀해야 한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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