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건희 회장,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듣더니 뜻밖 포옹 왜?
삼성그룹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고 했던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20년을 되짚어보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행사를 2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졌다.

이 회장과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둘째 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삼성 일가가 모두 참석했다. 삼성 계열사 사장단, 부사장단, 협력사 대표 등 350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오늘날 연매출 320조원(그룹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 삼성을 있게 한 원동력이 신경영 선언이었던만큼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행사였고, 곳곳에서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 "자만말라" 이 회장 다시 위기 의식 강조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이 이뤄놓은 많은 성과를 자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한 의기의식을 강조했다.

이날 만찬에서 영상메시지를 통해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며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행사장 입구와 로비 등에는 이 회장의 메시지를 강조하듯 "변화의 심장이 뛴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마련했다.

◆ "1993년 산 올려라"…세심한 만찬와인 눈길

만찬에 빠질 수 없는 와인 또한 신경영 원년을 떠올리게 하는 1993년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식전주로는 프랑스산 '모엣샹동 그랑 빈티지 1993'이, 전채요리에는 독일산 화이트 와인인 '발트하사 레스 하텐하이머 슈첸하우스 리즐링 카비넷 1993'이 제공됐다.

와인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이 회장이 만찬행사를 위해 직접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 씨스타 땐 조용하더니…가왕 조용필 열창하자

축하공연도 만찬 행사의 의미만큼이나 뜻깊었다. 이날 무대에 오른 가수는 '가왕' 조용필과 걸그룹 SES 출신 바다, 재즈보컬리스트 웅산 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세 사람은 모두 삼성과 공통점이 있다"며 "조용필은 30년 넘게 음악적 변신과 시도를 거듭해 최고 자리를 지켰고, 바다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웅산은 재즈로 한류의 또 다른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삼성이 걸어왔고 걸어가야 할 길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열린 이 회장 생일만찬에는 걸그룹 '씨스타'가 무대에 올랐지만, 대부분의 사장단이 알지 못한터라 3~4곡을 열창하는 동안 한 번의 박수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조용필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열창하고 내려오자 이 회장이 직접 포옹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 패셔니스타 이서현 부사장 사로잡은 '갤럭시 기어'

삼성그룹 패션사업을 이끄는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이날 손목에 삼성전자가 출시한 스마트 시계 '갤럭시 기어'를 차고왔다.

검정색 수트와 어울리는 골드 로즈 색상을 찬 이 부사장은 "갤럭시 기어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또 "카메라와 만보 기능을 주로 쓴다"고도 언급했다. 자타공인 재계 최고의 패셔니스타인만큼 이 부사장의 이날 갤럭시 기어 착용은 제품 홍보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후문이다.

◆ "지난 시간 돌아보니 뭉클"…사장들의 '말말말'

신경영 선언 이후 20년 간 추진해온 체질변화와 사업혁신을 온 몸으로 겪은 경영진들은 남다른 소감을 전했다.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IM)부문 사장은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지난 20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며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이 변했는데, 영상을 통해 돌아보니 가슴 뭉클했다"고 말했다.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은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됐다"고 밝혔고,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만찬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고 전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영상을 통해 "'전자는 암 2기다, 이미 망한 회사다'고 했던 이 회장 말이 처음엔 서운하고 자존심 상했다"며 "하지만 들을수록 위기감이 절절하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출처: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