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

창업주 토니 페르난데스, 사우스웨스트 항공 등 미·유럽 성공모델 아시아 적용
단일기종 중심으로 운항효율 극대화
[비즈&라이프] 내리고 내렸더니, 높이 높이 날았다…항공업계 '이케아'로
에어아시아(Airasia)는 말레이시아에 본사를 둔 아시아 최대 저비용 항공사다. 말레이시아 워너뮤직에서 일하던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은 2001년 적자 상태의 국영 항공사를 1링깃(약 400원)에 인수한 뒤 12년 동안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제 누구나 비행기를 탈 수 있다(Now everyone can fly)’는 슬로건처럼, 에어아시아는 파격적으로 싼 항공료를 앞세워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등 동아시아 20개국, 85개 도시로 운항하는 150여개 노선을 갖고 있다.

2009년 2270만명이던 에어아시아 비행편 탑승객 수는 올해 4000만명 안팎에 이를 전망이다. 보유 항공기 수도 회사 출범 당시 2대에서 139대로 늘었다. 2009년부터 올해까지 5년 연속 스카이트랙스 선정 ‘세계 최고 저비용 항공사’로 뽑히기도 했다.

에어아시아는 또 2006년 비행시간 4시간 이상의 장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저비용 항공 자회사 에어아시아X를 출범시켜 공격적인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은 한때 박지성 선수가 몸담았던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퀸스파크레인저스(QPR) 구단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

시사포인트1 모방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그 기업의 고유한 문화로 발전시켜라

에어아시아는 출범 때부터 가격에 민감한 승객을 공략한다는 분명한 비전을 앞세웠고 지금도 이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기존 항공사들이 비즈니스석 승객을 공략할 때 정반대 전략을 세운 것이다.

에어아시아는 기존 항공승객 1명당 4명의 잠재고객이 있다고 봤다. 그리고 최대한 항공권 가격을 떨어뜨려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에 주력했다. 일례로 인천~쿠알라룸푸르 왕복 항공권 최저가는 12만원 안팎으로 대한항공이나 말레이시아항공의 5분의 1 수준이다. 대신 부대서비스에 공짜는 없다. 옆자리가 비어 있는 행운도 옵션으로 판다.

[비즈&라이프] 내리고 내렸더니, 높이 높이 날았다…항공업계 '이케아'로
페르난데스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승객들은 지금도 계단이 싫다며 연결통로를 만들어 달라고 불평하지만 들어주기 어렵다”며 “담요와 음식, 연결통로 이렇게 계속 들어주면 어느새 풀 서비스 항공사가 되고 만다”고 말했다. 또 “과거 호주 버진블루(현 버진오스트레일리아)는 비즈니스 승객을 배려하다 비용이 늘었고 콴타스가 저가 항공사 제트를 만들면서 뒤로 밀렸다”고 했다.

에어아시아는 승무원과 일반 직원들에게 효율적이고 빠르게 비행기를 청소하고 시트를 정리하는 법을 끊임없이 훈련시킨다. 도착 후 재출발하는 시간을 단축시켜 항공기 이용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렇게 에어아시아 항공기는 하루 17~18시간 운항한다.

일반 항공사의 운항시간은 12~13시간 정도다.

그렇지만 이 회사는 ‘직원이 먼저, 고객은 그 다음’이라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다. 강제 훈련이 아니라 직원 스스로 느끼면서 즐겁게 일해야 좋은 일터가 만들어지고 결국 고객도 감동하게 된다는 판단에서다.

[비즈&라이프] 내리고 내렸더니, 높이 높이 날았다…항공업계 '이케아'로
특유의 마케팅 전략도 에어아시아의 성공비결 가운데 하나다. 워너뮤직 출신의 페르난데스 회장은 글로벌 자동차 경주와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 후원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빠르게 넓혔다. 이와 함께 디지털화 흐름에 맞춰 50원짜리 항공권을 내놓는 등 온라인 마케팅을 적극 펼쳤다. 항공권 판매의 80%가 인터넷으로 이뤄지고 있고 이 회사 홈페이지는 매달 2500만명이 방문하는 아시아지역 1위 여행사이트다.

현장 일을 중시하는 페르난데스 회장의 리더십도 주요 포인트다. 그는 “좋은 의자에 앉아 재무보고서만 봐서는 반드시 실수하게 된다”며 “적어도 한 달에 며칠은 직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일하면서 문제를 파악하고 의사결정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시사포인트2 미개척 시장은 많다…정확하고 확실한 실행력이 관건이다

에어아시아의 성공은 본질적으로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 경쟁의 승리다. 비즈니스 모델 경쟁은 제품이나 서비스 경쟁과는 다른 차원에서 기업 간 경쟁을 설명한다. 예컨대 애플과 델(Dell)은 제품 측면에서 같은 PC를 생산하고 있지만,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혀 다르다. 애플은 하드웨어는 물론 운영체제(OS)까지 자체 생산해 고가의 PC를 판매하는 데 반해, 델은 철저한 아웃소싱과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저가 생산 능력을 갖췄다.

< 항공 산업에서 말레이시아항공과 에어아시아 역시 같은 항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비즈니스 모델은 완전히 다르다. 말레이시아항공은 허브 공항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내 서비스와 여러 종류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복잡한 요금 체계를 제공한다. 반면 에어아시아는 전형적인 저비용 항공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해 최소한의 기내 서비스와 단일 기종 항공기를 보유하고 초저가 요금을 제시한다. > → 말레이시아항공과 다른 전략

결국 에어아시아는 가구 산업의 이케아(IKEA)나 의류 산업의 자라(ZARA)처럼 획기적으로 가격을 낮춘 저비용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비용에 민감한 고객을 중심으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비즈&라이프] 내리고 내렸더니, 높이 높이 날았다…항공업계 '이케아'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저비용 항공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에어아시아가 직접 창조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저비용 항공사의 원조는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다. 1971년부터 운항을 시작한 사우스웨스트는 좌석 배정, 기내식, 수하물 연결, 항공편 연결 등의 서비스를 없애고 보잉737 단일 기종을 중심으로 운항효율을 극대화한 저비용 모델을 항공 산업에 정착시켰다. 이후 사우스웨스트 성공을 모방하고 변형한 유럽의 라이언에어(Ryanair)와 이지제트(easyJet)가 1990년대 급성장했고, 아시아에서는 2000년대 들어 에어아시아가 재빠르게 사업 기반을 구축했다.

저비용 항공사의 경우 연료 효율이 좋은 보잉 737이나 에어버스 320을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대륙을 이동하는 장거리 운항엔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저비용 항공은 글로벌 경쟁이 아니라 지역 경쟁 중심이다. 미국의 국내선, 그리고 국제선이라도 운항시간이 비교적 짧은 유럽 노선, 이어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으로 순차적으로 확산됐다.

이런 측면에서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이 미국과 유럽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의 잠재력을 먼저 간파하고 이를 아시아 시장에 신속하게 접목시킨 것이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