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가 화장품 전문점들이 앞다퉈 파격 할인 행사를 벌이면서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할인 행사를 열고 있는 서울 명동의 화장품 점포 모습. 한경DB
중저가 화장품 전문점들이 앞다퉈 파격 할인 행사를 벌이면서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할인 행사를 열고 있는 서울 명동의 화장품 점포 모습. 한경DB
끊임없는 세일로 소비자는 웃는데…미샤까지 적자…중저가 화장품 '신음'
‘30% 세일’ ‘50% 세일’ ‘1+1’…. 10일 서울 명동 화장품 점포 앞에선 이런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미샤 더페이스샵 등 중저가 화장품을 파는 브랜드숍이 폭증하면서 세일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현장이다. 세일 경쟁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지만 할인 판매를 하지 않으면 안 팔리기 때문에 화장품 업체들은 세일 안내판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값싼 상품을 골라 사면서도 세일이 일상화될 만큼 화장품업체의 폭리가 구조화된 것 아니냐는 불신을 나타내기도 한다.

○연중 세일로 치킨게임

브랜드숍으로 불리는 중저가 화장품 전문매장은 몇 해 전까지 값싸고 품질이 좋아 ‘저렴이’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2000개에서 작년 4400여개로 우후죽순처럼 늘어났고 올 들어서도 코리아나와 소망화장품이 브랜드숍을 새로 냈다. 공급이 늘어나면서 마케팅 경쟁 또한 치열해졌다. 우리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주요 5개 업체(미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에뛰드 네이처리퍼블릭)의 연간 할인 일수는 2010년 54일이던 것이 2011년 107일, 지난해 240일로 급증했고 올해는 9월까지 252일에 달했다. 할인폭도 10~20%에서 최근에는 40~50%가 일반화됐다.

이 같은 할인 경쟁은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 1위 미샤 운영업체인 에이블씨엔씨는 올 2분기 매출이 전년보다 10% 늘었지만 5년 반 만에 적자를 냈다. 에이블씨엔씨 주가는 작년 9월 9만8000원에서 최근 3만6000원대로 폭락했다. 후발 주자인 네이처리퍼블릭과 더샘은 이미 지난해 각각 44억원, 95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더페이스샵은 3분기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 늘었지만(삼성증권 추정), 상반기 18%와 비교하면 성장세가 꺾였다.

대형 중저가 화장품 업체 중 하나가 기업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왔다는 설이 퍼지고 있는 것은 이런 실적 악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조현아 신한금융투자 책임연구원은 “자금력이 부족한 업체를 중심으로 조만간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 불신 가중

A사 관계자는 “중저가 화장품 시장에선 한 업체가 30% 이상 할인을 하면 매출이 즉각 두 배로 뛰고, 경쟁 업체가 할인할 때 우리만 안 하면 매출이 바로 급감하는 구조가 굳어졌다”고 말했다.

‘노 세일’ 원칙을 지켰던 업체들도 세일 경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11년까지 세일을 하지 않던 더페이스샵은 올해 100일 가까이 할인 행사를 벌였다. 헬스·뷰티용품 전문점인 CJ올리브영과 GS왓슨스도 세일에 나섰다.

중저가 화장품을 사용하는 직장인 이신영 씨(29)는 “온라인에서 세일달력을 공유하며 사기 때문에 세일 경쟁이 소비자 입장에선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도 “50% 싸게 팔아도 이익이 남는다면 소비자가격을 산정할 때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한국희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거리 제한 등이 도입되면 브랜드숍 성장률은 내년에 더 떨어질 것”이라며 “매출 중 브랜드숍 비중이 높은 화장품 업체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전문업체들은 실적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