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즐기는 습관]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스틸"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

영화 <위대한 개츠비>의 온풍이 미약하게나마 이어지면서 피츠제럴드의 소설이 팔리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를 스크린에서 처음 본 사람들이 뒤늦게 책을 선택한다는 사실에 굳이 놀랄 것도 없다. 그렇게라도 책을 본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우리는 책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탈출구 없는 불황이 계속되면서, 출판사들이 고전에만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서점에 가보면 마치 ‘고전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성공한 영화의 원작만이 기억되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영화를 보라고 권하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문학을 통해 구원’을 꿈꾸던 작가를 한 명 더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CGV 무비꼴라쥬에서는 스크린 문학전을 개최한다. ‘명작소설, 영화를 만나다’라는 다소 진부한 기획이지만, 꽤 욕심나는 영화가 2편 있다. 신촌아트레온에서 7일과 12일에 만날 수 있다. 미카엘 하네케의 <성>(1997)과 블라디미르 미차렉의 <아메리카>(1994)다. 이 영화의 제목만 들어도, 입에서 맴도는 이름이 있다. 1924년, 불혹의 나이에 결핵으로 죽은 체코의 유대계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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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영화 <성> 포스터" />영화 <아메리카> 스틸, 영화 <성> 포스터

“난 돌이 되어 간다. 작업을 통해서 나를 구해 내지 못한다면, 난 쓸모없는 인간이야.” 카프카는 1914년 7월 28일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노동자재해보험국 직원이었던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글을 쓰리라고 마음먹는다. 글은 “생존을 위한 나의 투쟁”이라고 밝히고 있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글을 쓸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 <변신>을 쓰는 와중에도 시간이 없음을 한탄했다. 우리는 으레 카프카를 인간의 부조리와 불안을 통찰한 작가로 평가한다. 즉 카뮈의 해석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카프카의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고독한 개인에 대한 서사로 상징적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를 보는 한 가지 시선에 불과하다. 최윤영의 <카프카, 유대인, 몸>은 ‘유대인’ 카프카에 집중한다. 놀랍게도 카프카의 작품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단어가 유대인이다. <변신>이 유대인 담론(유대인 몸과 퇴화)이나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 받았음을 시대적 고찰로 입증한다. 모리스 블랑쇼의 <카프카에서 카프카로>는 카프카의 <일기>를 통해 문학에 대한 성찰과 병적인 집착(죽음의 권리)을 추적하고 있다. 이 책들은 카프카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스스로를 문학(글쟁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후에 자신의 원고를 불살라 달라고 부탁했던 카프카는 여전히 우리에게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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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카프카, 유대인, 몸> 표지

카프카의 작품만큼이나 예술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담고 있는 전시를 소개한다. 다만 인간이 아니라 사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전이다. 미국 사진계에서 활동하는 린다 코너, 벤 닉슨, 크리스 맥카우, 클리아 맥키나의 작품을 모았다. 4명의 작가는 아날로그 프로세스를 사용해 빛을 포착한다. 이들에게 빛은 사진의 주제이자 재료이며, 모든 과정의 출발이자 결과물이다. 빛의 연금술사 혹은 빛의 순례자들이라는 찬사가 이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이다. 린다 코너는 대형카메라로 인간의 일상(유적)에 쏟아진 빛을 촬영하고, 태양빛 아래서 종이(프린팅 아웃 페이퍼) 위에 프린트한다. 그녀의 사진집 에 담긴 풍경과 문화적 탐구를 보면 우주적 영감과 숭고함이 느껴질 정도다. 태양이 있는 풍경 앞에서 카메라의 셔터를 열고 빛의 긴 궤적으로 인화지를 태우는 크리스 맥카우의 사진은 문득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 개념>(1960)을 떠올리게 한다. 폰타나가 평면에 도전하기 위해 캔버스에 날카로운 칼자국을 넣어 회화와 조각의 극한을 추구했듯이 맥카우의 사진작업()은 인화지를 태우는 빛으로 시공간을 넘어선다. 이유진 갤러리에서 7월 31일까지 빛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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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포스터

<두 도시 이야기>에 이어 프랑스혁명의 시기로 관객을 안내하는 또 다른 뮤지컬이 있다. 냉혈한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를 다룬 <스칼렛 핌퍼넬>이다. 하지만 눈물의 <두 도시 이야기>와 달리 웃음이 넘쳐난다. 허세남 퍼시 캐릭터의 능청스런 연기가 최고의 볼거리다. 마그리트와 결혼한 퍼시는 프랑스혁명의 잔혹성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귀족 친구들과 함께 ‘더 리그’라는 이름의 비밀결사대를 만든다. 퍼시는 아내 몰래 영웅 스칼렛 핌퍼넬이 되어 이중생활을 한다. 바로네스 오르치의 고전 소설(<빨강 별꽃>)이 원작으로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으며, <지킬 앤 하이드>의 연출가 데이빗 스완이 국내 초연의 지휘를 맡았다. 음악은 더 설명이 필요 없는 프랭크 와일드혼이다. 올해 국내에서만 와일드혼의 작품이 5편이나 무대에 오른다. 그의 드라마틱한 음악이 국내 뮤지컬 애호가들에게 얼마나 어필하는지 알 수 있다. 퍼시와 마그리트의 뮤지컬 넘버 ‘You are My Home’은 결혼식 축가에 자주 쓰일 정도로 귀에 익숙한 곡이다. 메인 테마곡 ‘Into the Fire’는 해병대 홍보용 곡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신바람을 불러일으킨다. 퍼시 역은 박건형, 박광현, 한지상, 마크리트 역은 김선영, 바다가 맡았다. 9월 8일까지, LG 아트센터에서 비밀결사대의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기명균 kikiki@tenasia.co.kr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민음사,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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