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불황의 터널에서도 남다른 노력과 혁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우뚝 선 성공기업들의 숨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발굴한 기업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편집자 주>
<박정률 휴롬팜 대표이사>

<박정률 휴롬팜 대표이사>

휴롬 원액기로 착즙한 100% 과일 주스…강남서 인기
식물전문가 '파이토스'가 고객 건강에 맞춘 주스 추천

'돈 되는 건 뭐든지 만드는' 일부 기업과 달리 단일 제품에만 5년을 매달려 연간 3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회사가 있다. '이영애 원액기'로 유명한 원액기를 만드는 생활가전업체 '휴롬'이다.

과일이나 채소를 가는 방식이 아닌 '눌러 짜내는' 기술로 원액기 시장을 창출한 휴롬은 세계 50개국에서 300만대 이상의 판매기록을 세우고 있다.

한 우물만 파는 정신으로 강소기업에 올라선 휴롬이 원액기를 앞세워 새로운 사업에 나섰다. 대기업 커피전문점이 지배하고 있는 카페 시장에 '건강'을 강조한 100% 원액 주스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 반, 설탕 반, 과일 약간' 같은 무늬만 주스가 아닌, 물 한 방울, 설탕 한 스푼 넣지 않은 진짜 주스로 승부를 보겠다는 게 휴롬의 전략이다. 달달하진 않지만 정직한 주스로 고객에게 다가서겠단 의미에서 카페 이름도 '휴롬팜'(휴롬농장)이라고 지었다. 작지만 알찬 휴롬의 건강한 제2 도전에 시선이 쏠린다.

◆ 커피전문가가 만든 주스카페 "다들 실패할 거라 했죠"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로 시럽 넣어서 하나요" 커피전문점 주문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고객이 커피 종류와 크기를 말하면 바리스타(커피 만드는 사람)는 이에 맞춰 제조한다. 천편일률적인 맛과 향의 커피에, 만드는 사람의 손놀림도 다분히 기계적이다.

휴롬이 지난 해 5월 새롭게 시작한 주스 카페 '휴롬팜'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고객이 "환절기라 감기기운이 있는 것 같은데 뭐가 좋을까요?"라고 물으면 "비타민C와 엽산이 풍부해 면역력을 높여주는 '오렌베리'(오렌지+파인애플+청포도+라즈베리)를 추천해 드립니다" 라는 파이토스(식물전문가)의 답이 돌아온다.

"업계에서는 다들 실패할 거라고 했어요. '건강'을 콘셉트로 한 카페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죠. 그래서 오히려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없던 거잖아요."

지난 달 26일 만난 박정률 휴롬팜 대표이사(41)는 2년 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휴롬 창업주인 김영기 회장으로부터 "세상에 없는 뭔가 새로운 걸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휴롬팜을 시작하게 된 박 대표는 카페의 기본 콘셉트에서부터 매장 인테리어, 메뉴 개발까지 직접 진두지휘했다.

휴롬팜의 모토는 인스턴트 식품에 빠져사는 현대인들의 식습관을 개선하고, 건강 음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는 것.

이를 위해 주스에 '물' '설탕' '파우더'는 일체 첨가하지 않고 엄선된 제철과일을 쓰는 걸 철학으로 삼고 있다.

"이게 정말 될까?" 하는 의심 속에 시작한 휴롬팜이지만 1년 반 만에 경기도 분당에서 강남 도산대로까지 4개의 매장을 열었다. 최근에는 중국 상하이에도 2곳의 매장을 내는 등 공격적인 출점을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휴롬팜을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커피전문가로 꼽혀왔다. 도심형 동물원 콘셉트 카페로 유명한 '주커피'와 강남의 브런치 유행을 선도하는 '더 페이지' 등이 그의 손길을 거쳤다.

커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커피전문점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을 인식하고 휴롬팜에 도전했다.

"국내 커피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고, 선진국은 커피 만큼 주스에 대한 수요가 높은 편인데 국내는 여전히 낮은 편이었죠. 저희는 하드웨어가 있었기에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대표가 말한 하드웨어란 휴롬 원액기다. "원액기가 뭐지"라고 낯설어하는 사람들은 '이영애 원액기'하면 쉽게 알아듣는다. 배우 이영애가 아이에게 먹일 주스를 만들어주는 광고 장면이 떠올라서다.

원액기는 과일이나 채소를 '가는' 방식의 믹서기, 주서기와 달리 맷돌을 돌리듯 느리게 재료를 '짜내는' 기기다.

휴롬이 독자개발한 '저속착즙(SSS) 기술'을 통해 재료를 지그시 눌러 액을 만드는 것으로, 영양소 파괴를 최소화하고 재료의 맛과 색을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2008년 출시 이래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등 해외 홈쇼핑에서도 히트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휴롬팜의 모든 메뉴는 바로 이 원액기를 사용해 만든다.

"과일과 채소는 생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주스로 마셨을 경우 체내 흡수량이 4배 이상 높아집니다. 불용성 식이섬유가 제거되기 때문에 비타민과 무기질 흡수도 빠르고요. 특히 생으로 먹을 땐 영양소가 가장 많은 씨와 껍질은 버리게 되지만, 원액기를 사용하면 씨와 껍질까지 모두 짜내 현대인에게 부족한 필수영양소를 고르게 채워주죠"

◆ 물·설탕·파우더 없이 오직 과일만…"이렇게 달아?"

건강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주스 카페를 시작한 박 대표였지만 출발부터 쉽지는 않았다. 커피와 달리 '생물'을 다뤄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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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모든 재료가 가공된 상태로 들어오지만 휴롬팜에서 쓰이는 과일, 채소는 말 그대로 '날 것'이라 재료 단계에서부터 변질을 막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무엇보다 물, 설탕, 파우더 를 섞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기 위해 당도가 높은 과일만을 쓰는게 중요했다.

"예를 들어 파인애플은 매장 한 곳 당 한 달에 800kg 정도를 소비합니다. 과일을 쓰는 단일 브랜드로는 가장 많죠. 구매팀에서는 재료로 쓰일 모든 과일을 과당측정기로 일일이 측정해 기준치에 부합할때만 통과시킵니다. 설탕을 쓰지 않고도 맛있는 주스를 만드려면 재료 자체가 가진 맛이 달고 맛있어야죠"

하반기부터는 아예 국내 과일농장들과 전속계약을 맺고 과일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질 좋은 과일을 선점할 수 있고, 지역농가 육성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기준을 통과한 재료들이 넘어오면 개발팀이 분주해진다. 이 재료들을 가지고 최적의 영양조합과 맛을 내는 메뉴를 개발하는 일에 돌입한다.

크리스마스 시즌 등 일부만을 제외하고는 메뉴판이 고정된 커피전문점과 달리 휴롬팜은 제철과일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메뉴가 몇 달에 한 번씩 바뀐다.

또 재료를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맛과 영양이 달라져 일반 카페보다 메뉴 가짓 수가 20~30%는 많다.
이렇다보니 개발팀 직원들은 물론 박 대표까지도 하루에 주스를 20잔 넘게 마시는 날이 허다하다고.

첫 매장을 오픈할 때는 주스만을 다뤘지만 최근에는 주스에 곁들여 먹을 사이드메뉴와 브런치 등도 선보였다. 이런 메뉴들도 대부분 휴롬 원액기를 사용해 만든다.

영국의 전통 과자 중 하나인 '스콘'은 원액기로 짜낸 시금치를 반죽할 때 넣고, 이탈리아 빵 종류인 '치아바타'도 당근을 원액기로 착즙해 반죽한 뒤 발효하는 식이다.

개발팀이 만든 메뉴들은 각 매장에 있는 '파이토스' 들의 손을 거쳐 고객에게 간다. 바리스타, 소믈리에(와인전문가)는 이제 익숙해진 말이지만 파이토스는 생전 첨 들어보는 단어. 박 대표가 휴롬팜을 준비하면서 몇몇 직원들과 함께 고민해 만든 말이다.

"식물 속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을 지칭하는 '파이토케미칼'과 '피플'(사람)에서 따온 것으로 '식물을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주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식물을 먼저 이해하고 다룰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이들은 단순히 고객의 주문대로 주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건강상태에 따라 알맞은 주스를 추천해주고, 개발단계에도 함께 참여한다.

과일과 채소에 대한 높은 지식을 바탕으로 건강한 음료를 전달하는 것이 주된 임무인 만큼 까다로운 교육과정을 거쳐 선발하고, 파이토스가 된 뒤에도 정기적으로 시험을 통해 능력을 검증받는다.

◆ 한 잔 7000원에도 남성고객 발길…건강에 대한 '투자'

박 대표는 기존의 커피전문점과 휴롬팜의 가장 큰 차이가 '고객의 인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액세서리'로 여겼다면, 휴롬팜에서 먹는 주스는 건강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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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 가지 프로모션 메뉴만을 빼고 휴롬팜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의 주스는 커피 한 잔 값보다 비싼 편입니다. 보통 7000~8000원씩 하거든요. 그런데도 재구매율이 굉장히 높아요. 매출 비중이 가장 큰 도산대로점의 경우 단골이 전체의 50%를 넘을 정도죠"

건강을 우선시하다보니 20~30대 젊은층은 물론 40~50대 중장년층 고객들도 상당 수다. 특히 커피전문점은 여성고객들이 주를 이루는 반면 휴롬팜은 비즈니스를 하러 오는 남성 고객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흔히 마시는 커피보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주스를 대접하는게 사업 파트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박 대표는 얼마 전 중국 상하이를 다녀왔다. 이곳에 휴롬팜의 첫 해외 매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중소 생활가전 업체가 만든 주스 카페가 대기업 커피전문점도 쉽지 않은 해외 진출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상하이를 첫 진출지로 선택한 이유는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진출해있는 국제적 도시인데다 해외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날씨가 덥고 습하다보니 중국 전역에서 과일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라는 점도 작용했다.

하지만 상하이에만 과일 주스 브랜드가 500여개 포진해 있어 공략이 쉽지만은 않다. 휴롬팜은 현지 업체들과 차별화를 위해 수입과일 등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할 계획이다.

기존 주스카페가 5평 정도의 소형 매장이었다면 휴롬팜은 '카페테리아' 개념의 대형 공간에 주스와 다양한 사이드메뉴, 베이커리 등을 선보인다.

이달 말에는 시안에도 매장을 낸다. 중국에서 자리를 잡은 뒤에는 과일 소비량이 많은 방콕(태국) 등 아시아 다른 도시로도 추가 매장을 열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연말께 롯데가 경기도 이천에 오픈하는 프리미엄 아웃렛 안에 휴롬팜 매장이 들어간다.

"단순히 매장 수를 늘리기보다는 질적으로 제대로 된 곳을 만드려고 합니다.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서는 숙련된 파이토스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을 양성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죠. 현재는 직영 매장만 운영하고 있지만, 내년 상반기부터는 가맹점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박 대표가 휴롬팜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건 '건강에 대한 가치'다. 이곳에서 만들어내는 '주스'가 한 잔의 음료로 끝나지 않고 건강에 대한 본질을 생각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

"가끔 '설탕이 안들어갔는데 이렇게 달아? 에이...조금이라도 넣었겠지'라고 생각하는 고객도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힘들어도 '건강'을 위해 절대적으로 지키는 몇 가지가 있죠. 이런 것들을 고객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가 추천한 '건강메뉴'는 무엇일까. 최근 해외에서 암 예방에 탁월한 '슈퍼푸드'로 뜨고 있는 '밀싹'(밀의 새순)이다. 휴롬팜에서는 쌉싸름한 맛 때문에 그냥 먹기에 부담스러운 밀싹을 응용해 다양한 과일을 혼합한 음료, 베이커리 등의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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