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광복절에 '두 동강'난 광화문광장
“우리나라가 독립했을 때 지금 저 학생들처럼 춤이 절로 나왔었지.”

15일 낮 12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손호칠 씨(86)는 태극기를 흔들며 춤을 추는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손씨의 표정은 그러나 불과 몇 시간 전 같은 장소에서 발생한 ‘기습 시위’에 대해 묻자 금세 어두워졌다. “오늘처럼 좋은 날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다른 날도 아니고 광복절인데….”

68주년 광복절인 이날 광화문광장 인근에서는 몇 시간 차이로 상반된 풍경이 펼쳐졌다. 손씨가 목격한 첫 번째 장면은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8시40분까지 광화문광장 옆 세종로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의 몸싸움이었다.

한국대학생연합 등 진보단체 회원 140여명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을 규탄하면서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를 불법점거했다.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광복절 경축식을 겨냥한 기습 시위였다.

경찰이 불법 시위자 대부분을 연행하면서 두 시간여 만에 시위는 일단락됐지만 자칫 광복의 기쁨을 함께 나누려던 국가 행사의 취지가 퇴색할 뻔한 순간이었다.

세 시간여 뒤 같은 장소에서는 광복의 기쁨을 온 몸으로 표현한 ‘인간 태극기’ 행사가 진행됐다. 세계국학원청년단이 주최한 이번 행사에 참가한 대학생 등 청소년 50여명은 각각 빨강, 파랑, 검정색 천을 두른 채 세종대왕 동상 앞에 놓인 흰 천 위에 누워 태극기 형상을 만들었다. 이들은 만세 삼창을 외치면서 68년 전 독립의 감격을 재연했다. 이번 행사에 참가하려고 미국에서 귀국한 최은지 양(16)은 “광복절을 공휴일로만 알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며 “최근 5년간 3·1절, 광복절, 개천절 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해 왔다”고 말했다.

해마다 광복절이면 서울에서 각종 집회·시위가 벌어지지만 그 목표물은 36년간 이 땅의 주권을 빼앗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였다. 이번 광복절에도 일본 정부의 우경화를 규탄하는 보수단체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벌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국민 모두 광복의 기쁨에 하나 돼야 할 광복절에 국가원수가 참석하는 행사가 방해받을 정도의 불법 집회를 벌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광화문광장의 두 동강난 풍경이 씁쓸하게 다가온 이유다.

홍선표 지식사회부 기자 rick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