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근절대책 불구, '돈의 유혹'에 번번이 '와르르'
"골프금지", "특별감찰" 비리근절책 '재탕'…실효성 의문


국세청 추문(醜聞)의 흑역사

국세청 추문(醜聞)의 흑역사




CJ그룹 검찰 수사 후폭풍이 국세청에 '먹구름'을 잔뜩 몰고 왔다. 지난 1일 송광조 서울지방국세청장이 CJ그룹으로부터 금품 및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여 전격 사의를 표명,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단계로까지 치닫고 있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지난 1997년 세풍(稅風) 사건에 버금가는, 개청 이래 최대 위기상황에 직면했다는 우려 섞인 말들이 나돌고 있다. 가뜩이나 세수상황도 녹록치 않은 가운데,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 금품 추문에 연루되면서 국세청은 깊은 자괴감에 빠진 모습이다.


하위직 직원들에게는 틈만 나면 '청렴'을 주입시키면서 고위 관리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잇속을 챙겨 왔다는 사실이 재차 드러난 것에 대한 조직 내부의 비판여론도 상당하다. 특히 송광조 서울국세청장이 연루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더 이상 '과거의 일'로 치부하기도 어렵게 됐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동안 국세청이 사용했던 비리차단을 위한 '극약처방'들이 결과적으로 별다른 효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증명되면서, 향후 외부로부터 강도 높은 쇄신 압박이 가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정경유착', '뇌물비리'…전직 국세청장 수난사(受難史) = 국세청 수장, 국세청장 자리는 지난 1966년 개청 이래 현 김덕중 국세청장을 포함, 총 20명이 거쳐갔다.


국세청은 세금추징 금액을 결정짓는 '세무조사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과 함께 이른바 '4대 권력기관'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국세청을 이끌어 가는 국세청장직은 그 어느 자리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직 국세청장들은 정치적 중립 유지 실패와 '검은 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채 불명예 퇴진하거나 구속된 전례가 상당히 많다.


실제로 김덕중 국세청장 이전, 19명의 전임 국세청장 가운데 비리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거나 구속된 사례만 해도 8명에 이른다.


이는 거의 모든 부처를 통틀어서도 가장 높은 비율이다.


과거 비리사건은 주로 정치권 중립을 지켜내지 못한 사례들로 점철됐다.


5대 국세청장을 역임한 뒤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가정보원)을 지낸 안무혁 전 청장과 이후 국세청장직을 넘겨받은 성용욱(6대) 전 청장은 모두 1987년 대선 당시 불법선거자금을 거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여전히 국세공무원들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1997년 '세풍(稅風)사건'(당시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새누리당 이회장 대선후보 지원을 위해 현대, 대우 SK 등 23개 대기업으로부터 약 166억원을 불법모금)도 국세청이 정치적 중립 유지에 실패하면서 비롯된 비극.


이후 불거진 사건은 주로 청탁성 뇌물사건 즉, '개인비리'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


12대 국세청장을 거쳐 건설교통부 장관까지 지냈던 故 안정남 전 청장은 부동산 투기, 증여세 포탈, 사채업자 세금감면 청탁 등 불명예 사유로 건교부 장관 취임 20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13대 손영래 전 청장도 썬앤문그룹, SK그룹과 관련된 불미스런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15대 이주성 전 청장은 퇴임 이후 현직 재직 시절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들통나면서 실형을 살았다.


최근 CJ그룹 세무조사 무마 의혹사건의 중심에 있는 16대 전군표 전 청장은 이미 지난 2007년 부하직원으로부터 인사청탁 명목으로 수 천 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현직 청장으로는 최초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의 중심에 섰었다.


전 전 청장은 이번 CJ 사건과 관련해서도 제기된 혐의가 인정, 구속영장이 신청되면서 전직 국세청장으로는 최초로 2번 구속되는 불명예 기록을 남기게 됐다.


17대 국세청장을 지낸 한상률 전 청장은 전임 전군표 청장에게 인사청탁 취지로 유명작가의 고가 그림을 상납하고 '정권실세'들과 접대골프를 치는 등 부적절한 처신으로 불명예 퇴진했고 이후 기업체들로부터 거액의 고문료 등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기도 했다.



2000년 이후 국세청 비리근절책, 요란했지만 효과는…

2000년 이후 국세청 비리근절책, 요란했지만 효과는…




□ 재탕·삼탕 비리방지책…헛바퀴 도는 '조직쇄신' = 국세공무원들의 뇌물비리 수난사는 앞서 나열한 국세청장뿐만 아니라 중견 고위급, 하위직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터져 나왔다.


그때마다 국세청은 조직쇄신과 기강확립을 전면에 내세우며 각종 비리 방지대책을 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에 그쳤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로 매번 비슷한 대책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방식으로 재탕·삼탕, 내부적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을 정도다.


대체적으로 국세청 조직에서 대형 비리사건이 발생된 경우 주기적으로 꺼내드는 대책은 ▲골프금지령 ▲특별감찰반 신설 등 감찰강화 ▲정신교육 등 인식변화 등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지난 2000년 안정남 전 청장 재직시절, 직원비리가 속출하자 국세공무원 직무교육과정에 부패방지 특별교육을 포함시키고 각 지방국세청에 정신교육 강화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14대 이용섭 전 청장 시절에는 조사국 직원 비노출 제도를 도입하고 세무조사를 진행 중인 국세공무원이 지정된 장소 이외 조사를 받는 업체관계자와 접촉할 경우 금품수수 여부와 관계없이 비위행위로 간주하고, 4촌 이내 친인척 이해관계와 관련된 직무는 하지 못하도록 했다.


아울러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취지 하에 금품을 받은 국세공무원은 물론 금품을 제공한 납세자까지도 쌍방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금품 제공업체에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난 2004년경에는 조사국 순환근무제, 뇌물비리 고발직원 승진혜택, 국세공무원비리신고센터 개설 등의 대책이 이어졌고 2005년 이주성 전 청장 시절에는 감찰업무를 총괄하는 감사관실의 확대 개편, 감찰활동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2007년 전군표 전 청장 시절에는 세무조사 실명제, 조사종결 후 6개월 간 관련업체 임직원 접촉 금지 등 내부통제시스템이 강화됐고, 5급 사무관 이하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무기한 골프금지령이 하달되기도 했다.


2007년 말 사상 초유로 현직 청장(전군표)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자리를 이어받은 한상률 전 청장은 4급 이상 고위간부를 대상으로 비위정보를 수집하는 ‘특별감찰팀’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특별감찰팀은 한 전 청장의 '권력강화'를 위한 비선 조직이라는 눈총만 잔뜩 받은 채 소리소문 없이 폐지됐다.


2009년 초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이 수개월간 국세청장 직무대행을 하는 기간에도 자체전담 감찰팀이 활동했고, 외부출신인 백용호 전 청장 시절에는 본청 감사관 자리를 외부인에 개방(문호승 전 감사관)하는 조치를 단행하기도 했다.


백 전 청장은 그해 말, '워치독'(Watchdog)이라는 비위수집 기구를 신설 국민들로부터 직접 정보를 받겠다고 공언하고, 고위직 특별감찰팀 및 비리정보수집 전담팀을 출범시키는 특단의 대책을 제시했지만 별다른 실효성 없이 모두 6개월~1년 안에 사라졌다.


이후 19대 이현동 전 청장 시절에도 직무관련 골프금지령, 조사국 간부 대폭 물갈이 등 대책을 쏟아냈지만 직급을 불문하고 국세공무원들의 추문과 비위는 끊이지 않았다.


현 김덕중 국세청장도 지난 4월 부임하자마자 세무조사 특별전담반 출범, 조사국 순환근무, 골프금지령 등 세무조사 비리근절 대책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기존 대책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국세청 조직 내부에서는 비슷한 대책이 재탕되면서 '내성'이 생겨 대책들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제는 직원이 2만 명에 가까운 거대조직에서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자포자기(自暴自棄)'성 발언까지도 공공연하게 나오는 현실이다.


그만큼 현재 국세청의 상황은 전체적인 제도는 물론 인적쇄신을 포함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일각에선 실효성 없는 대책만 보여주기식으로 내놓는 것이 아닌 '제3의 개청'에 준하는 혁신적인 변화를 추진해야 비리사건을 근절할 수 있다는 의견이 높게 형성되고 있다.


조세일보 / 유엄식, 이현재 기자 usyoo@joseilbo.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