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형 전 장관 등 실명제 주역 회동해 성과 회고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금융실명제가 12일로 도입된지 20주년을 맞았다.

최근 정·재계 인사의 비자금 의혹 등으로 차명거래를 전면 금지하자는 논의가 쏟아져 금융실명제법 개정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실명제는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긴급 명령 발동으로 도입됐다.

정확히 20년째다.

음성적인 금융거래를 막고자 은행 예금과 증권투자 등 금융거래 때에는 가명이나 무기명 거래를 허용하지 않고 실제 명의로만 거래하도록 한 제도였다.

실명제 주역인 홍재형 당시 재무부장관, 진동수 당시 재무부 과장, 사무관으로 실무를 맡았던 최규연 현 저축은행중앙회장과 백운찬 관세청장 등 10명은 12일 회동해 금융실명제 20주년에 대한 소회를 나눌 예정이다.

최규연 회장은 "금융실명제는 007작전처럼 정부 내 몇몇 사람만 알 정도로 극비리에 추진됐던 작업"이라면서 "금융거래의 투명성과 선진화를 앞당긴 획기적인 정책으로 당시 주역들은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실명제가 부분적으로 차명거래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정 요구도 적지 않다.

금융실명제는 본인 동의 없이 명의를 도용해 금융 거래를 하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다만, 합의에 따른 차명계좌 개설을 금지한 조항은 없어 사실상 합의 차명계좌를 인정하고 있다.

최 회장은 "당시에도 많이 고민했으나 선의의 차명 거래가 많아 이를 전면 금지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최근 차명거래 전면 금지 법안이 나와있으나 잘못 손대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다수의 여야 의원은 남의 이름을 빌려 금융거래를 하는 차명거래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의 이종걸, 민병두 의원은 차명거래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관련 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종걸 의원은 차명 거래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규정을 발의했다.

박민식 의원은 차명계좌 거래에 대해 과징금을 최대 30%까지 매기고 단계적으로 처벌하자는 입장이다.

정치권은 금융실명제법 20주년을 맞아 토론회 개최 등 차명 거래 금지 분위기를 조성해나갈 방침이다.

이에 따라 올해 9월 정기국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차명 거래 금지를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 등 정부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차명거래를 전면 금지하면 선의의 차명거래를 막아 금융실명제가 퇴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호회 같은 경우 총무 명의로 통장을 개설하는 예도 적지않은데 차명 거래를 전면 금지하면 이런 경우도 법 위반으로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선의의 차명 거래가 너무 많은데 차명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차명 거래 적발 시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이 타당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고유선 기자 president21@yna.co.krcin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