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찬 관세청장은 20년 전 당시 금융실명제 준비 작업을 진행하며 비밀유지가 가장 중요하고 힘든 과제였다고 6일 밝혔다.

백 청장은 1993년 금융실명제 전격 도입되기 두 달 전부터 '금융실명제 비밀 준비단'에 발탁돼 주무 사무관으로서 실무를 도맡았다.

백 청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추진한다는 비밀이 외부로 안 새어 나가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며 "정보가 유출되면 일대 혼란이 오기 때문에 비밀 유지 작업에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 청장은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2년여간 실명제 백서 발간을 주관하며 제도의 보완과 정착에 이바지했다.

그는 2010년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장으로 고위공무원에 입문했고 이듬해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냈다.

이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관세청장으로 발탁됐다.

다음은 백 청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

--당시 실명제를 추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정부가 실명제를 추진한다는 비밀이 외부로 안 새어 나가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소문이 퍼지면 금융기관에 묻어놓은 부정한 돈이 일제히 빠져나가는 것을 비롯해 일대의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10명 안팎의 준비단 실무진이 작업을 하면서 비밀유지는 정말 목숨을 걸고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비리로 추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금융실명제 준비단에 뽑힌 실무진 모두 주변에 외국 출장 간 것으로 꾸몄다.

과천 주공아파트 504동 304호를 넉 달간 빌려 비밀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약 두 달간 작업하면서 생긴 일화가 많다.

관리인과 아파트 이웃 주민에게는 교수들이 급한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고 둘러댔다.

파쇄 작업을 할 때마다 소음이 커서 아래층에서 항의가 들어오자 파쇄기 밑에 이불을 깔고 작업하기도 했다.

만약 준비 사실 새 나갔었다면 공직생활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였다.

아찔했다.

--실명제 도입 주역으로서 20주년 맞는 소회는.
▲금융실명제를 시행한 이후 한국 금융에 여러 가지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

우선, 금융실명제로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과세 형평성 측면에서도 금융실명제가 기본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다.

실명제는 정치에서도 공명선거를 위한 정치자금의 투명화도 이뤘다.

지하경제의 음성적 자본거래가 급격히 줄고 여러 가지 거래 질서, 특히 상거래 질서가 양성화됐다.

금융실명제가 한국 사회의 투명화와 건전화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데 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다.

--실명제가 잘 정착됐다고 생각하나.

▲그때 당시 금융실명제 시행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실명제가 시행되지 않았다면 현재 수준과 비교했을 때 거래의 투명화와 건전화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당시 실명에 대한 의의는 상당히 컸다.

법률적으로 의무화한 게 우리나라가 최초였고 역대 정권에서 두 번이나 시행하려고 했지만 유보됐다가 세 번째로 시도해 성공한 경우다.

정착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큰 의미가 있다.

--당시 차명계좌 전면금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나.

최근 CJ 등 대기업 차명계좌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데, 이런 부작용은 예상 못 했나.

▲금융실명거래라는 것이 돈의 실소유 여부를 따지기 전에 자기 신분증을 가지고 자기 계좌를 통해 거래하라는 의미다.

만약 계좌 주인과 돈의 실소유자가 맞지 않는다면 증여세 등의 과세를 하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울러 돈의 실소유와 계좌주인이 일치하는지는 금융기관에 검사할 의무와 권한을 부여해야 하는데 지금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금융실명제를 어떤 식으로 보완·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나.

▲금융실명제에서 계좌 실명자에 대한 비밀보장이라는 부분이 금융실명제 시행 당시보다는 완화된(퇴색된) 부분이 있다.

금융실명제를 엄격하게 시행하면서도 정부나 금융기관은 계좌 실명자에 대한 비밀유지를 준수해야 한다.

(서울연합뉴스) 홍국기 기자 redfla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