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팥빙수는 팥이 맛있어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본점 5층에 유명한 팥빙수점이 있다. 은행에서처럼 대기번호표를 받아 기다리는데, 푹푹 찌는 한여름엔 대기자가 200명 가까이에 이를 때도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7000원짜리 결코 싸지 않은 팥빙수를 먹기 위해 기꺼이 기다린다.

그곳에 갈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핵심이 경쟁력을 가지면 나머지는 부차적으로 따라온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그곳 팥빙수는 ‘화려하지’ 않다. 우유얼음을 갈아 팥과 작은 찹쌀떡 두 개를 얹은 게 전부다. 그런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팥빙수의 핵심은 팥과 얼음이다. 얼음이 부드럽고 얹은 팥이 맛있으니 다른 게 필요없다. 프루트칵테일이나 아이스크림을 듬뿍 얹어주진 않지만, 그게 오히려 팥빙수 본래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시끌벅적하고 느긋하게 앉아 있기 어렵지만 ‘분위기’도 크게 중요하진 않다.

200명 기다리는 팥빙수점

매사가 그렇다. 학창시절 엄하고 성격이 좀 괴팍해도 학생들이 잘 가르친다고 ‘인정’한 선생님들은 인기가 있었다. 인성교육도 중요하지만 어쨌거나 잘 가르치는 게 선생님의 최고 덕목 중 하나니까. 배우도 예쁘고 잘생기면 좋지만, 결국엔 영화나 극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연기력을 갖춰야 오래 사랑받는다. 그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금융은 어떨까. 나 같은 금융소비자가 은행을 찾는 이유는 주로 예금을 하거나 대출을 받기 위해서다. 예금은 0.1%포인트라도 높은 이자를 받기 위해, 대출은 한푼이라도 내는 이자를 줄이기 위해 여러 조건을 맞춰가며 최적의 상품을 고른다. 은행이 망하지 않는다고 하면 금리가 경쟁력이다.

은행이나 증권사가 판매하는 금융투자상품의 핵심은 수익률이다. 펀드의 수익률이 좋으면 광고뿐 아니라 신문 기사, 또는 입소문을 통해 투자자들이 찾게 돼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휴대폰으로도 금융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금융회사들의 지리적 위치에 대한 민감성은 낮아졌다. 대신 금융상품 자체의 경쟁력이 점점 더 부각되는 추세다.

예전엔 목돈을 모아 내 집을 장만하는 게 재테크의 주된 관심사였다. 요즘은 노후대비가 최대 화두다. 금융전문가들은 연 2~3%의 저금리 시대에 예금만으로는 필요한 노후자금 마련이 쉽지 않아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금융상품 경쟁력은 수익률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펀드에 가입해 깨진 아픈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회사들은 신뢰를 주지 못했다.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대비가 잘 돼 있다는 호주를 한 번 볼까. 호주 근로자들이 의무가입 퇴직연금인 ‘슈퍼애뉴에이션’에 자발적으로 추가납부를 하면서 노후준비를 하는 것은 장기 수익률이 뒷받침돼 ‘그만한 상품이 없다’는 인식이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그 배경엔 가입자들이 퇴직연금 펀드를 선택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경쟁력 없는 상품은 도태되는 구조가 있다.

금융소비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익을 돌려주기 위해선 투자상품이 다양해져야 한다. 이를 발굴하고 ‘창조’하는 것은 금융회사 몫이다.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금융위원회 역할이고, 금융회사들이 ‘애먼 짓’ 하지 않나 감독하고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 금융감독원의 할 일이다.

‘팥빙수는 팥이 맛있어야’ 하는 것처럼 분명한데, 그동안 각각 이 같은 핵심 경쟁력을 얼마나 키워왔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랬다면 ‘금융허브’ 구호를 내건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과연 감독당국이 수수료를 올려라 내려라 하는 현실에 머물러 있을까.

박성완 증권부 차장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