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3개에 불과한 히든챔피언이 독일은 무려 1300개에 달한다고 한다. 히든챔피언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강소(强小)기업을 말한다. 독일이 히든챔피언 덕에 잇단 경제위기에도 굳건히 버텼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세계가 독일의 히든챔피언을 주목하며 배우려는 이유다.

히든챔피언에 속하는 기업들은 기업수명 평균 60년 이상, 평균 매출 4300억원, 세계시장 점유율 33% 이상이라고 한다. 이 중 3분의 1은 100년 이상 업력을 자랑하는 가족기업이다. 성공비결은 과감한 세계화, 한우물을 파는 전문화, 숙련된 기술인력, 유연하고 합리적인 지배구조라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하지만 히든챔피언은 독일 정부가 계획적으로 육성하거나 지원책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기업들이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비좁은 내수시장을 벗어나 해외로 달려나갔고 정부는 세제 등에서 그런 환경을 조성해준 결과다.

한국과 독일 산업이 공통적으로 제조업 위주이고 중소기업이 99%를 차지하는데 왜 한국에선 히든챔피언이 나오지 못하는지에 대한 답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중소기업을 의존적으로 만들고, 피터팬 증후군을 조장한다. 눈먼 정책자금이 많으니 중소기업들이 기술개발보다 관청주변을 배회하게 된다. 또 선호직업 1위가 공무원이고 고시를 패스해야 출세로 여기는 사회분위기 속에 기름밥 먹어가며 장인이 되려는 인재를 구하기 힘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가장 큰 장애물은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율(50%)이다. 창업주의 고령화로 가업승계가 발등의 불인데 상속세를 내려면 쓰리세븐이나 한섬처럼 회사를 팔아야 할 정도다. 전체 세수 중 0.79%에 불과한 일회성 상속세를 걷으려다 황금알을 낳아줄 거위를 잡는 꼴이다. 물론 가업승계 공제가 있다지만 매출 2000억원 이하인 경우 300억원까지만 공제될 뿐이고, 반드시 가족 1명이 전액 상속해야 한다. 반면 독일에는 이런 제한이 전혀 없고, 사업을 유지하는 한 상속세가 전액 면제다.

역대 정부마다 중소기업 육성을 강조했고 독일을 배우자고 야단이다. 이런 대못을 놔두고 히든챔피언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