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일감몰아주기 과세의 불편한 진실
국세청이 지난 4일 이른바 ‘일감몰아주기 과세(이하 일감 과세)’ 신고 대상으로 추정되는 1만여명(6200여개 기업 대주주 및 친인척 등)에게 신고 안내문을 발송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만명 중 30대그룹 총수와 오너 일가는 7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9930여명은 중견·중소기업 주주들이었다. 국세청이 포착한 것만 이 정도일 뿐, 실제 과세대상인 중견·중소기업 오너 일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재계는 추정한다. 대기업들이야 국세청의 ‘감시망’을 피하기 힘들지만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논란이 많았던 ‘일감 과세’는 대기업 총수 일가를 겨냥한 대표적인 ‘표적 입법’인데 중소기업들이 제물이 되고 말았다. ‘증여세 폭탄’을 맞게 된 중소기업 오너들은 “웬 날벼락이냐”는 반응들이다. “중소기업이 과세 대상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의 말(4월22일 김덕중 국세청장과의 간담회)이 새삼 떠오른다.

경제민주화 유탄 맞는 中企

수직계열화나 시너지 창출, 원가 절감, 업종 전문화 등 경영상의 필요성을 무시한 채 단순히 일감몰아주기를 ‘부도덕한 행위’라고 규정한다면 상당수 중견·중소기업은 ‘나쁜 기업’이 된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주로 친인척들을 중심으로 경영진을 구성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기업 월급쟁이는 열심히 하면 최고경영자(CEO)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꿈이라도 꿀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며 “청년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데는 급여 등의 문제 외에 이런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일감 과세뿐만이 아니다. 하도급업체에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압력을 가하다 적발되면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책임을 물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같은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1차에서 2, 3차 협력사로 내려갈수록 단가 인하 압력이 심하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갑보다 더한 ‘을의 갑질’ 얘기다.

‘경제적 약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건 대형마트 영업 규제로 애꿎은 농민과 영세 납품업체만 피해를 보는 게 현실이다. 최저임금 인상도 그렇다. 노·사·공익위원으로 이뤄진 최저임금위원회는 최근 사용자위원들의 퇴장 속에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5210원으로 올해보다 7.2% 올리기로 결정했다. 아르바이트 직원을 많이 쓰는 영세기업과 호프집, PC방, 동네빵집 사장들만 죽어날 게 뻔하다.

'토초세 전철' 되풀이 우려

일감 과세의 사례처럼 상당수 기업 오너들이 새로 만들어진 법규 체제에서 ‘잠재적인 범법자’가 된다면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어야 했다. 그래도 부도덕한 행위라고 주장한다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들이 더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이다. 중소기업에 일감몰아주기가 많은 것은 지나치게 높은 상속·증여세에도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은 최고 65%에 이른다.

일감 과세는 위헌 시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대주주들이 주식 배당금에 대한 소득세를 내는데 다시 세금을 물리는 것은 이중과세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대해 세금을 내라는 것도 말이 안된다. 유휴·비업무용 토지의 땅값 상승분에 세금을 매기다가 ‘미실현 이익에 과세한다’는 논란을 빚은 끝에 헌법불합치 판결로 폐지된 토지초과이득세(토초세)가 문득 생각난다. ‘경제민주화’의 칼끝이 대기업과 총수 일가를 망신주는 데만 맞춰져 있다 보니 부작용이 안 나올리 만무하다.

이건호 산업부 차장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