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범제 화백 홍보대사로 변신한 최야성 감독 “천년 후에도 기억에 남는 영화감독 될 터”

[김성률 편집국장] 무려 23년 동안이나 최연소 영화감독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영화감독 최야성. 그가 중견 서양화가의 ‘홍보대사’라는 조금은 특수한 타이틀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사실 그의 변신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영화 ‘검은 도시’, ‘로케트는 발사됐다’, ‘파파라치’등의 독특한 영화들을 연출하며 '영화계의 이단아’, ‘영화계의 풍운아’, ‘문화 게릴라’라는 타이틀을 얻은데 이어 그의 직업은 발명가, 시인 그리고 ‘MC야성’이라는 닉네임으로 힙합가수로 데뷔하는데 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최야성이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 것은 2012년 자유선진당의 국회의원 공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였다. 당시 그는 ‘물갈이론’을 내세워 “현역의원의 70%를 물갈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왜 중견화가의 홍보대사 겸 매니저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것일까? 그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인터뷰] 조범제 화백 홍보대사로 변신한 최야성 감독 “천년 후에도 기억에 남는 영화감독 될 터”

“영화감독 최야성은 그 누구도 아닌, 최야성 저만의 방식대로 예술에 접근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서양화가 조범제 화백은 조범제 화백 스스로 평생 갈고 닦은 본인의 예술 스타일로 작품에 임하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예술활동 30년째인 저 최야성의 예술 업력으로 미뤄볼 때 조범제 화백은 이중섭 화백과 박수근 화백의 강렬한 예술혼이 되살아 난 듯한 독보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 느껴지고 있습니다”

최 감독은 감독으로 시작했지만 자신에게 미술에 대한 안목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조범제 화백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현대미술사에 이름을 남길 위대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말한다.

“세계 예술계의 무게중심이 서서히 동양으로 옮겨 오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렘브란트,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피카소, 모네, 뭉크, 샤갈, 마티스, 폴 세잔 등 세계적 화가의 반열에 반드시 이름을 새길 큰 예술가가 우리나라에서 배출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저는 조범제 화백이 그 반열에 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기에서 잠시, 최 감독이 극찬하고 있는 조범제 화백은 누구인가?
[인터뷰] 조범제 화백 홍보대사로 변신한 최야성 감독 “천년 후에도 기억에 남는 영화감독 될 터”

‘금강산 전도’로 유명한 조범제 화백은 1954년생으로 올해 예순의 나이.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났다. 알려진대로 그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이다. 부친은 195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이자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조시원 선생이며 모친은 역시 독립운동가인 이순승 여사의 4남2녀중 2남이다.

그의 집안에서만 모두 열 한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고 하는데 첫째 큰아버지가 조용하 선생이며 둘째 큰아버지가 유명한 조소앙 선생이다. 셋째 큰아버지 조용주 선생, 넷째 큰아버지 조용한 선생, 고모 조용제 여사, 누나 조순옥 여사는 모두 독립운동가였다. 매형인 안춘생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종질로 제5대 광복회 회장과 독립기념관 건립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풍경과 정물, 누드에 두루 능한 조범제 화백은 서양화가이면서도 동양화 진경산수를 서양화하는데 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조범제 화백은 최근 '제11회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 문화,예술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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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眞景山水)는 조선 후기인 18∼19세기에 성행했던 화풍이다. 진경산수란 한 마디로 산천에 있는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 산수화다. 그래서 ‘실경산수’라고도 불린다. 진경산수는 조선 숙종 때부터 영ㆍ정조 때까지 유행한 화풍이라고 한다.

겸재 정선에 의해 시작된 진경산수는 뒤를 이어 심사정, 이인상, 강세황, 김홍도, 이인문 등 수많은 화가들이 추구했는데, 특히 정선과 김홍도의 작품이 탁월한 필치와 화면으로 이름이 높았으니 진경산수는 겸재가 시작하여 김홍도와 함께 꽃을 피운 우리 민족 전통의 화법인 셈이다.

‘금강산 연작’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조범제 화백은 나아가 우리나라의 명산들을 작품화 하면서 그만의 화풍을 정립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의 진경산수를 완성하고 독립운동을 기록화로 제작하는 것이 그에게는 필생의 과업이라고 한다. 조 화백은 틈틈이 천안 단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서양화를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 조범제 화백 홍보대사로 변신한 최야성 감독 “천년 후에도 기억에 남는 영화감독 될 터”

이야기는 한참을 에둘러 다시 최야성 감독에게로 돌아온다. 한 마디로 혈기방장한 그가 조범제 화백에게 매료된 까닭은 또 무엇일까?

“조범제 화백은 최근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무려 11인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가히 대한민국 최대 독립운동 가문의 일원입니다. 독립운동으로 위대한 집안의 피를 큰 예술로 승화시킨 거목인 그에게 힘을 싣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조범제 화백은 ‘대한민국’ 이라는 국호를 처음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삼촌 조소앙(독립운동가 / 본명 조용은)선생을 비롯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출신인 아버지 조시원(본명 조용원)선생과 독립운동가인 어머니 이순승 여사의 아들로 5세 때부터 현재까지 무려 55년째 붓을 들었고, 평생 친일을 한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는 일화로도 유명한 서양화가입니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서양화하며 서양화로 동양화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갖고 있는 조범제 화백은 보기 드문 애국열사 가문의 큰 예술가"라는 것이다. 최야성 감독은 그의 작품세계를 논하기에 앞서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독립운동가의 가문 출생이라는 ‘히스토리’이자 ‘스토리’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었다.
[인터뷰] 조범제 화백 홍보대사로 변신한 최야성 감독 “천년 후에도 기억에 남는 영화감독 될 터”

그렇다면 최야성 감독은 이제 영화감독은 접고 서양화가의 홍보대사로, 나아가 정치인으로 완전히 변신하는 것일까? 그의 앞길에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은 영영 사라지는 것일까? 또 상업영화의 감독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 것일까? 그에게 물었다.

“아니죠. 저는 지금도 영화를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저는 단순하게 흔히 말하는 ‘흥행 영화감독’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천년 후에도 기억에 남을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21세기 한국인상’을 받고 ‘미스 월드퀸 유니버시티’의 심사위원을 맡은 적도 있는 최야성 감독. 국내 항공법 1호 박사인 故 최완식 박사와 한민대학교 이사장을 지낸 박정순 여사의 차남인 그는 무척 독특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인생관이 돌연 궁금해지기도 했으나 그의 영화관과 그만의 철학을 다룰 인터뷰는 훗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최야성 감독은 가까운 미래에 분명 세계적인 한 방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와 예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따금씩은 몇몇 천재들에 의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고는 했기 때문이다. 최연소 영화감독이라는 타이틀에서 다시 최초의 서양화가 홍보대사가 된 최야성. 그의 멈출 줄 모르는 질주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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