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광객 증가와 독창적 모델을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두타를 중심으로 동대문 패션상가의 부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nakyung.com
중국 관광객 증가와 독창적 모델을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두타를 중심으로 동대문 패션상가의 부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김병언 기자 misaeon@hnakyung.com
“블라우스 레이스는 (재봉 공장에) 들어갔지? 이 청색은 고압 염색 아냐? 저 치마는 노랑 빼고 분홍으로 가자.”

지난 29일 동대문 도매 쇼핑몰 디오트의 ‘물’ 매장. 오전 9시에 열리는 디자이너 회의에서 윤지영 사장(36)의 따발총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긴 탁자 위엔 20벌 이상의 신상품 견본이 올려져 있었다.

새로 기획한 것부터 봉제공장에 들어가 있는 것까지 하나하나 들춰보며 “밑단까지 2.95야드에 팔둘레 레이스 넣고 염색비 추가하면 단가가 9600원이니까 너무 비싸다”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디자이너들은 체크해야 할 점을 적은 주문확인서를 들고 공장으로 향했다. 아침에 기획한 옷 중 1~2개 정도는 그날 늦은 밤에 매장에 걸린다.

스피드·고급화·디자인…3박자 타고 동대문 부활

○2주일 vs 24시간

동대문 도매 쇼핑몰에서는 디자이너가 만든 옷이 소비자 앞에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야 하루 이틀이다. 윤원희 물 디자이너는 “아침에 기획한 옷 중 1~2개의 신상품은 밤에 매장에 나온다”며 “1주일에 적게는 5개, 많게는 10여개의 신제품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원부자재 공급처가 한곳에 모여 있고 봉제공장도 창신동 장위동 등 주변에 포진해 있는 ‘패션 클러스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니클로 자라 같은 글로벌 제조·직매형 의류(SPA·패스트패션)업체들도 새로운 물건을 만들려면 최소 2주일에서 한 달은 걸린다. 속도 경쟁력으로는 동대문을 따라갈 곳이 없다는 얘기다.

동대문 유어스 쇼핑몰에서 도매점을 운영하는 김창경 사장은 “요즘은 물량이 늘어 작은 온라인 쇼핑몰부터 지방 소매상까지 하루에 작성하는 ‘장끼’(주문서)가 평균 200장에 달한다”며 “중국에서 재주문이 들어올 경우 물량이 몇천장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임준원 롯데자산개발 쇼핑몰운영부문장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자라의 회장이 동대문에서 하루 만에 옷이 걸리는 걸 보고 깜짝 놀라 ‘자라의 원조는 동대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기획, 생산, 제작, 판매가 동시에 빨리 이뤄지는 것이 바로 동대문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백화점·유명 브랜드도 ‘러브콜’

생산은 예전에도 빨랐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품질이다. 과거엔 ‘동대문 옷’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백화점이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동대문 르네상스’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두타에 ‘블루밍’ 매장을 운영하던 임서현 디자이너와 ‘밀’ 매장의 명유석 디자이너, ‘더스타일’의 이경아 디자이너는 최근 줄줄이 롯데백화점 영플라자에 입점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4~5년 전만 해도 동대문 옷이 백화점에 매장을 내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최근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있고 독특한 디자인의 동대문표 옷을 찾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싸구려’로 여겨지던 동대문 옷에 브랜드 이름만 부착하는 ‘라벨링’도 또 다른 트렌드가 되고 있다. ‘누죤’ 쇼핑몰의 한 도매상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SPA 브랜드에서 ‘우리 옷 좀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제안이 들어왔는데 디자인 콘셉트가 우리와 맞지 않아 거절했다”며 “백화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유명 여성복 L브랜드, P브랜드 중엔 우리가 만든 옷에 라벨만 단 것도 많다”고 귀띔했다.

○‘두타 모델’로 소매상권도 ‘붐업’

도매뿐 아니라 소매 쇼핑몰도 다시 붐비고 있다. 저가의 중국산 의류를 들여놨던 7~8년 간의 ‘암흑기’를 딛고 △자체 디자인△국산 품질 △빠른 신상품 순환주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특히 두산이 운영하는 두타는 두 차례 새단장을 통해 신인 디자이너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쇼핑공간을 넓게 바꿔 소비자를 끌기 시작했다. 매년 7억원씩 들여 개최하는 ‘두타 벤처 디자이너 콘테스트’에서 1등을 한 디자이너에게 1억원의 상금과 ‘두타 무료 입점’이란 파격적인 혜택을 줬다.

문을 연 첫해인 1999년 2000개였던 점포 수를 2009년 520개로 줄이며 쇼핑공간을 넓혔다. 편리한 쇼핑 환경과 디자이너의 고급스러운 옷이 알려지면서 두타의 매출은 2010년 3315억원에서 2011년 3780억원, 지난해 4082억원으로 점점 늘고 있다.

31일 문을 여는 롯데피트인 역시 ‘두타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1~2층을 동대문 디자이너 브랜드로 채운 것이다. 김종문 두타 고객팀장은 “두타가 가격 정찰제를 동대문에서 처음 시행했는데 이 덕분에 ‘동대문에서도 믿고 살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줬다”며 “현재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5만5000명으로, 올해 매출 신장률 15%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민지혜/강진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