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LP공장' 이길용 LP팩토리 사장 "지드래곤·조용필 덕에 올해 20억 콧노래"
국내에서 마지막까지 LP 공장을 갖고 있었던 ‘서라벌레코드’가 폐업한 해는 2005년이었다. LP 음반의 명맥이 끊긴 지 6년이 흐른 2011년 10월. 한 사나이가 LP 공장을 새로 만들었다. LP 음반을 찾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제작한 LP판은 4000장에 불과할 정도로 사업이 부진했다.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순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LP 열풍이 불면서 대박이 터졌다.

◆“주문 밀려 밤샘 작업”

이길용 LP팩토리 사장(41·사진)은 “5월 한 달 동안 만들어야 할 LP 음반만 9000장”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폐업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것이 풀렸다”며 “주문이 밀려드는 바람에 지금은 밤샘 작업을 하고 있다”고 즐거워했다.

경기 김포시 대곶면에 차린 LP팩토리 공장에선 최신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이돌그룹 ‘빅뱅’ 멤버인 지드래곤의 노래였다. 컴퓨터나 CD플레이어가 아닌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LP팩토리 직원들이 지드래곤의 LP 음판을 만든 뒤 턴테이블로 음질과 성능을 검사하고 있었다. 국민가수라 불리는 조용필의 신곡 음반도 이곳에서 이달 말 LP로 만들 예정이다.

사업 초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국내에 LP 기술자들과 관련 서적이 거의 없어 기술을 습득하는 데 많은 돈을 들여야 했다. 벨기에 LP기업 ‘비닐리움’에서 LP 제조기계를 들여왔고, 직원 5명과 함께 직접 LP 제작에 나섰다.

그는 가수들과 소속사를 직접 뛰어다니며 LP 음반 발매를 제안했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해 김광석, 패티김, ‘장기하와 얼굴들’ 등의 LP 음반을 내놓았다.

◆“국내 수요 늘 것 확신"

이 사장은 공연기획자였다. 에릭 클랩튼과 ‘Maroon 5’ 등 해외 뮤지션의 내한공연이나 ‘지산록페스티벌’ 등 국내 페스티벌을 총괄하는 일을 해왔다.

그가 LP 제작에 뛰어든 것은 음악인들이 국내에 LP공장이 없어 미국이나 일본 업체에 제작을 의뢰한다는 사실을 어느 날 알게 되면서부터다. 해외에서도 CD 음반이 주류지만 LP공장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가수들이 앨범을 발매할 때 대부분 LP판을 병행 제작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450만장의 LP 음반이 만들어졌고, 일본에서도 30만장이 판매됐다.

이 사장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해외에 진출하려는 국내 가수들이 많아 해외 시장을 타깃으로 한 LP 음반 주문이 증가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올해 20억원 매출 전망

이 사장은 “LP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연령층은 의외로 20~30대”라며 “MP3 등으로 음악을 듣지만 갖고 싶은 음반은 LP 앨범으로 소장하려는 문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아이돌그룹 LP 음반 주문이 늘어나는 이유다. 그는 “20~30대 가운데는 턴테이블이 없는데도 LP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다”며 “CD 가격의 두세 배인 3~4만원에 LP 음반이 판매되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LP 음반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기존의 검은색 LP판 뿐만 아니라 컬러LP, 픽처디스크(가수 사진 등이 프린트된 LP)를 개발했다. 그는 “감각적이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20~30대를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고안했다”며 “LP 열풍이 지속될 수 있도록 다양한 LP판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지난해 LP팩토리의 연간 매출은 4500만원이었지만 올해는 2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