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에서 배운다 - 다시 살아난 도요타
한국경제·보스턴컨설팅그룹 공동 기획

몸집은 점점 커졌는데 의사소통·결정은 폐쇄적…위기시 유연하게 대응 못해
현지 법인 권한 높이고 리스크 대응 시스템 바꿔…작년 1위 복귀 성공
[S&F 경영학] 리콜에 날개 꺾인 도요타…낡은 '매뉴얼' 깨고 부활 가속페달

2010년 2월24일 미국 하원에서 ‘도요타 청문회’가 열렸다. 6개월 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일가족 4명이 사망한 렉서스 ES 350 급발진 사고 원인과 책임을 추궁하는 자리였다. 8시간 동안 이어진 청문회에서 도요타 창업주(도요다 기이치로)의 손자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과 짐 렌츠 북미법인 사장은 위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도요다 사장은 울먹이면서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질주하던 도요타의 ‘품질 신화’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도요타가 글로벌 전역에서 리콜한 차량은 1018만대. 자동차 업계 리콜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많은 전문가들은 도요타의 재기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뒤 도요타는 부활에 성공하며 옛 지위를 되찾고 있다. 2011년 제너럴모터스(GM)와 폭스바겐에 밀려 전 세계 판매량 3위까지 추락했던 도요타는 작년 1위 메이커에 복귀했다.

◆과신한 위기대처 능력이 문제였다

2000년대 중반 도요타는 700만대 수준이던 글로벌 판매량을 2~3년 내 1000만대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 GM을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가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모두가 실현가능성을 높게 봤다. 부품 재고를 최소화하는 JIT(just-in-time), 현장의 낭비 요인을 없애는 린(lean) 등 이른바 ‘도요타 생산 시스템(TPS)’이 있는 한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완벽해 보였던 TPS가 역설적으로 도요타의 발목을 잡았다.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게 TPS의 강점이다. 하지만 글로벌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개별 부품과 모듈(부품을 조립한 결합체) 조달 체계가 복잡해졌고 TPS의 잠재 리스크도 커졌다.

1980년대 400만대였던 도요타의 글로벌 판매 대수는 2008년 897만대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같은 부품과 모듈을 쓰는 차량 모델도 크게 증가했다. 하나의 부품에 불량이 생기면 수십만~수백만대의 차량에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가 됐다.

이런 잠재 리스크를 도요타도 알고 있었다. 도요타는 그러나 ‘위기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아이신 화재 사건’을 통해 얻은 위기 극복 노하우 때문이었다.

1997년 거의 모든 도요타 차량에 장착되던 P밸브(브레이크용 부품)를 생산하던 핵심 계열사인 아이신 공장이 화재로 전소됐다. 자동차 생산을 전면 중단해야 할 위기였다. 하지만 도요타는 불과 나흘 만에 문제를 해결했다. 설계 도면을 다른 부품사에 제공하고 대체 생산라인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화재 발생 85시간 만에 P밸브 생산을 재개했다. 결과적으로 아이신 화재에서 거둔 성공이 도요타를 자만에 빠지게 만든 셈이다.

◆폐쇄적 의사결정이 화를 키웠다

도요타 특유의 폐쇄적 경영시스템도 리콜 사태를 키운 원인이었다. 도요타는 리콜 사태 이전까지 주요 의사결정을 일본 본사 주도로 내렸다. 미국 등 주요 지역 본부장들은 현지가 아닌 일본 본사에서 근무해야 했다.

품질 불량 등을 보고하는 라인도 철저히 일본 본사 중심이었다. 해외법인엔 리콜을 결정할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보고 체계도 복잡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현지 딜러→미국법인 품질 담당자→미국법인 임원→일본 본사 담당자’ 등 네 단계를 거친 뒤에야 후속 의사결정이 내려졌다.

2009년 렉서스 급발진 사고가 터졌을 때 3개월이 지나서야 리콜을 결정한 것도 이런 의사결정구조 탓이다. 뒤늦게 도요다 사장이 미 의회 청문회에서 사과를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리빌딩’ 기회를 찾다

리콜 사태가 이어진 2009~2011년은 75년 도요타 역사상 최악의 시기였다. 동시에 도요타엔 리빌딩(rebuilding)의 기회이기도 했다. 도요다 사장 주도 아래 새로운 도요타를 만드는 대수술을 시작했다.

먼저 본사 중심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확 바꿨다. 미국에서 만든 차에 대해선 현지 법인이 리콜을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일본 본사에 근무하던 지역본부장들도 현지에 보냈다.

보고 체계도 수술했다. 현지 법인 품질담당자와 일본 본사 품질담당 임원 간 핫라인을 구축했다. 도요다 사장 직속으로 기술·생산·영업 담당 임원 150명으로 구성된 글로벌 품질 특별위원회도 만들었다.

‘EDER(early detection & early resolution)’이라는 리스크 대응 시스템도 새로 구축했다. 콜센터, 인터넷 등을 통해 품질 불량과 소비자 불만을 미리 파악하는 일종의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EDER 도입 이후 리스크 대응속도는 한층 빨라졌다. 2010년 10월 미국 소비자잡지 컨슈머리포트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GX470의 품질 문제를 지적하자 도요타는 10일 만에 리콜을 결정했다.

◆부활하는 도요타

TPS의 잠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도요타는 이전까지 대부분의 부품을 일본 내에서 조달하던 방식을 바꿔 해외 공장의 경우 현지부품 조달 비중을 늘렸다. 폭스바겐식 설계 단순화 전략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에 공통으로 쓰이는 부품을 레고블록처럼 만들어 조립하는 방식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도요타는 빠르게 부활하고 있다. 작년 글로벌 판매량은 974만7827대로 1년 전보다 180만대가량 늘었다. 2년 만에 GM을 제치고 1위 자리도 되찾았다. 실적도 좋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 3일 “도요타의 작년 영업이익이 1조2000억엔(약 13조2500억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올해 초 도요타가 발표한 영업이익 전망치(1조1500억엔)보다 500억엔 많다. 2011년 영업이익(4682억엔)보다는 156% 급증한 실적이다.

고영석 BCG 파트너/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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