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채무재조정이 시작된 22일 서울 역삼동 자산관리공사 본사에서 신청자들이 창구 직원에게 빚을 얼마나 깎아주는지 등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국민행복기금 채무재조정이 시작된 22일 서울 역삼동 자산관리공사 본사에서 신청자들이 창구 직원에게 빚을 얼마나 깎아주는지 등에 대해 문의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1. 이모씨(60)는 2003년에 동네 슈퍼마켓을 시작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는 신세가 됐다. 그는 “처음엔 빚을 갚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대부업체 돈까지 빌려 빚이 1000만원을 넘어섰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급기야 슈퍼마켓 문을 닫고 야반도주했다. 지금은 일용직을 전전하며 월 80만원 수입으로 살고 있다. 이씨는 “국민행복기금에서 대부업체 빚까지 깎아 준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2. 서울에서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김모씨(51)는 2009년 사업을 시작했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1000만원가량 은행 대출을 받은 뒤 2011년부터 상환을 못 하고 있다. 전화요금 등도 연체돼 빚은 2000만원까지 불어났다. 1년 이상 ‘연체자’ 딱지를 달고 산 그는 22일 행복기금에 채무재조정을 신청했다. 김씨는 “빚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아주 시원하다”고 말했다.

국민행복기금 채무재조정 접수가 시작된 이날 서울 역삼동 자산관리공사(캠코) 본사 3층은 아침부터 100명가량의 신청자가 몰려 북적였다. 어린아이를 안고 온 엄마, 퀵서비스 배달원, 경비원 복장의 중년 남성 등이 대기 번호표를 손에 쥐고 초조한 얼굴로 상담 순서를 기다렸다.

이날 오후 6시까지 캠코 본사에 신청한 사람만 600명이 넘었다. 캠코 지사와 신용회복위원회,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 국민은행, 농협은행 등 다른 창구를 통해 신청한 사람을 합하면 이날 하루 동안만 1만2367명이 신청했다. 이 중 인터넷으로 신청한 사람이 7293명(60%)에 달한다.

오는 30일까지는 가접수 기간이기 때문에 채무재조정이 가능한지 여부를 알려주지 않는다. 다음달 1일부터 10월31일까지 본접수 기간이 되어야 본격적인 채무재조정이 이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신청자가 많았던 것은 하루라도 빨리 빚 독촉에서 해방되고 싶은 채무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가접수 기간에도 신청 즉시 채권추심이 중단된다. 본접수가 시작되면 신청 후 3~5일 내에 채무재조정이 이뤄진다. 방문접수 외에도 전화(서민금융 콜센터 1397)나 인터넷(www.happyfund.or.kr)으로도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은 ‘본인이 대상자가 되는지’와 ‘원금을 얼마나 깎아주는지’였다. 행복기금 신청 조건은 다소 까다롭다. 지난 2월 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된 빚이 있는 사람으로 총 채무액이 1억원 이하인 경우에 한해 신청할 수 있다. 이자는 무조건 탕감된다. 원금 감면율은 10월 말까지 스스로 신청하면 40~50%, 이후 행복기금의 통보를 받아 채무재조정이 되는 경우(채권 일괄매각)는 30~50%다. 기초생활수급자 등은 70%까지 원금을 깎아준다.

정부는 소득과 연령, 연체기간,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점수를 매겨 감면율을 달리 적용키로 했다. 최장 10년까지 분할상환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만약에 중도에 또 빚을 못 갚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신청자들도 많았다. 정부는 1년 이상 성실하게 상환할 경우 최대 1000만원까지 긴급자금을 또 빌려주고, 다치거나 실직하는 경우엔 최고 2년(대학생은 3년)까지 상환을 유예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행복기금은 성실한 상환 의지를 가진 저신용층에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려 도입한 제도”라며 “일각에서 형평성과 도덕적 해이 문제를 우려하고, 채무자들이 다시 빚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에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상은/도병욱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