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산업정책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 한때 정보기술(IT) 산업에 주력했던 각국의 산업정책이 금융위기 이후에는 해가 갈수록 제조업을 다시 중시하는, 제조업 부활정책을 추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같은 제조업이라도 고용증대 효과가 큰 업종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가장 선도하는 곳은 미국이다. 오바마 정부 취임 이후 고용창출계수가 높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각종 세제지원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본도 엔저를 통해 제조수출업의 부활에 주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유럽도 세일가스 개발로 생산여건이 크게 개선된 미국으로 이전하는 자국기업을 잡아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국이 정책적으로 중점을 두면서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오랜만에 나올 정도로 제조업 경기가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의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는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동안 잊혀졌던 일본의 단칸지수도 올 1분기에는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도 올 2월에는 크게 반등했다.





각국이 마치 유행처럼 제조업 부활에 노력하는 데에는 거시경제정책 목표를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체감경기 개선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특정국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체감경기의 대표 지표는 경제고통지수이다. 이 지수는 오쿤(Arther Okun)이 고안한 것으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해 산출한다.①



개념상 물가와 실업률이 낮아지면 이 지수가 하락해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고통은 개선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처럼 물가가 추세적으로 안정된 시대에 있어서 체감경기를 개선한다는 것은 일자리 창출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전통적으로 물가안정을 중시해 왔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경우 아예 고용목표제(employment targeting)를 도입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아직도 주력산업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정보기술(IT) 산업은 우선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다. IT산업은 네트워크만 깔면 깔수록 생산성이 증가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돼 경기되면 일자리, 특히 청넌층의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IT산업의 반작용으로 벌써 이 산업의 최대 이용자이자 피해자인 청년층을 중심으로 신(新)러다이트 운동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운동은 19세기초 기계를 파괴시키자는 러다이트 운동에 빚대어 IT산업을 파괴시키자는 움직임을 말한다. 일부에서는 바이러스 전파, 디도스(DDos) 공격 등을 이 운동으로 인식한다.



신(新)인본주의 운동도 주목된다. IT산업의 발전으로 온라인 공간상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줄어들고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다.②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만나더라도 대화하지 않고 ‘카톡’으로 의사 소용하는 경우다. 이럼에 따라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이 신인본주의 운동임





반면 전통적인 제조업은 생산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 때문에 IT산업이 주도할 때와 동일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더 투입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고용창출계수가 높아진다. 과거 제조업이 주도가 돼 경기가 회복할 때에는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 지표와 체감경기 간의 괴리가 심하게 발생되지 않았다.



전통적인 제조업을 중시할 때 추진 방법에 있어서도 종전과 다르다. 가장 눈에 띠는 것은 미국이 주력하고 있는 ‘리쇼오링(reshoring)’ 정책이다. ‘리쇼오링’이란 아웃 소싱의 반대 개념으로 해외에 나가있는 미국 기업들을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불러들이는 정책을 말한다.③



‘리쇼오링’ 정책을 통해 미국 내로 들어오는 기업들은 퇴출국으로부터 관세와 각종 비관세 장벽을 통해 보복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환율을 유지해 가격경쟁력을 보완해 줘야 한다. 오바마 정부가 수출진흥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달러 약세책이 나온 때가 ‘리쇼오링’ 정책의 추진 시기와 맞물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인수합법(M&A) 시장을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M&A 시장은 거래되는 매물의 성격이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정상적인 기업이 거래되는 ‘제1선 시장(primary market)’과, 부실기업이 거래되는 `제2선 시장(secondary market)‘으로 후자에 나오는 부실기업을 인수해 제조업을 육성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한 나라 경제에서 IT와 제조업 중 어느 산업이 주도하느냐는 경기와 증시와 관련해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IT산업은 상품 주기(life cycle)가 짧기 때문에 이 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주기가 짧아지고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이 나타나 진폭이 확대된다.④ 특정국 경기순환에서 주기가 짧아지고 경기순응성이 나타날 때에는 전망기관들의 예측력도 떨어진다.



IT산업과 대조적으로 제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어느 국면(예, 회복기)이든 진입하기가 어렵지 일단 진입하면 오래간다. 그 결과 주기가 길어지고 진폭이 축소되는 `안정화(stabilizer)‘ 기능이 강화돼, 이때는 전망기관들의 예측이 잘 맞고 이를 토대로 계획을 세우더라도 큰 무리가 없다.



전통적인 제조업 부활정책은 미국 증시 앞날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 논쟁’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다.⑤ 현재 미국 증시는 1996년 상황과 유사하다. 이달 들어 하루 간격으로 사상최고치 행진이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달 중순 이후에는 다우존스지수가 10일 연속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 월가의 참여자들은 주가 상승세가 경제여건에 비해 빠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올들어 다우존스지수 상승폭은 무려 11%에 달하지만 성장세는 2%대로, 잠재수준을 밑돌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올라가는 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여전히 강하다고 거품이 끼었다고 볼 수 있다.





주도산업이 IT에서 제조업으로 바뀌고 있는 점도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현재 미국 주가가 ‘비이성적 과열’이 아니라고 보는 이유 중의 하나다. 2001년 사태에서 보듯이 IT가 주도가 될 때에는 거품이 특정계기로 꺼지게 되면 시장과 경기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한다. 하지만 제조업이 주도가 될 때에는 주가가 일단 상승세를 타면 설령 거품 우려가 제기된다 하더라도 랠리(rally)가 오래간다.



그런 만큼 시간이 갈수록 비관론보다 낙관론에 힘이 심리는 것이 요즘 월가의 분위기다. 워런 버핏, 짐 오닐 등은 아직도 미국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주식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 올 1분기가 끝나고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세계적인 투자은행(IB)들도 연말 주가 목표치를 대폭 상향 조정했다.





최근 들어 우리 경제는 부동산과 증시, 경기 면에서 ‘트리플 디커플링(triple decouplin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경기는 성장률이 이미 2%대로 떨어졌다. 로스토우의 경제발전단계 이론상 1인당 소득이 22000달러대 적정 성장률인 4∼5%대에 비해 턱없이 낮아 ‘조로화’와 중진국 함정에 대한 우려가 함께 제기되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종전의 디커플링 현상은 선진권과 신흥권 간에 발생했지만 최근에는 우리만 나타난다는 점이다. ‘외톨이 현상’이다. 유럽 위기 등이 글로벌 성격이 짙은 점을 감안하면 트리플 디커플링 현상은 우리 내부요인에 비롯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정책당국자와 정치권이 ‘대외요인 탓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책임회피성 잘못된 판단이다.





자연스럽게 우리 경제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단기적으로 연착륙과 경착륙 간의 논쟁 속에 후자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오래됐다. 중장기적으로 지속성장 여부와 관련해 ‘성장의 덫(growth trap)`에 걸릴 것이라는 비관론과,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각국 산업정책에 있어서 제조업 부활정책은 트리플 디커플링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고심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경기부양과 우리 경제 안정을 유지 차원에서 외환위기 직후부터 쏠림 현상이 심했던 IT산업 위주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산업정책이 최소한 제조업과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한다.





중국 등 해외에 나가있는 국내 제조업 기업들의 생산여건이 악화되면서 영업이익률이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글로벌 전략도 수정이 필요한 때이다. 미국 등이 추진하는 ‘한국판 리쇼오링 정책’을 병행하되, 퇴출국으로부터 예상되는 수출상의 불리한 점을 보완해 주기 위해서는 환율은 일정수준 이상 유지해 줄 필요가 있다.





<글.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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