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만, 김현숙 부부가 경북 안동 남선면에 있는 나눔공동체의 비닐하우스에서 직원들과 새싹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안동=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이종만, 김현숙 부부가 경북 안동 남선면에 있는 나눔공동체의 비닐하우스에서 직원들과 새싹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안동=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1984년 겨울 어느 날 밤 경북 안동의 작은 교회. 자원봉사자로 이곳에 머물던 재활교사 김현숙 씨는 옆 방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잠든 사람들을 모두 깨우고 나가보니 매캐한 연탄가스가 자욱했다. 보일러실에 있던 청년이 떠올랐다. 단단히 잠긴 유리문을 깨고 들어가자 신학생 이종만 씨가 피거품을 물고 신음하고 있었다.

“동공은 풀렸고 몸은 돌덩이 같았지요. 사람을 시켜 이이를 둘러업고 맨발로 병원까지 정신없이 뛰었죠. 이런 생명의 은인인 나를 30년 동안 막 부려먹고 있다니까요.” 김현숙 교사(54)는 지금은 남편이 된 이종만 유은복지재단 원장(57)을 보며 30년 전 상황을 회고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죽게 내버려두지 왜 날 살려냈냐고 아내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으니 이런 큰 상을 받는 날도 오네요.” 이원장의 눈가가 붉어졌다.

사회복지법인 유은복지재단을 운영하는 이들 부부는 지난 3일 ‘2013 호암상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9일 부부가 살고 있는 안동 남선면 현내리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나눔공동체를 찾았다. 안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30분가량 차를 타고 들어가는 외진 곳이다. 택시기사는 “밤에는 무서워서 ‘따블’을 줘도 가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부부는 이곳에서 장애인들과 생활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새싹을 키운다

앞치마 차림으로 달려나온 김 교사는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죠? 점심부터 하시죠”라며 반겼다. 직접 재배한 싱싱한 새싹을 듬뿍 얹은 비빔밥이 나왔다. “우린 이렇게 먹어요. 다들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건강하죠.” 그릇을 다 비울 때쯤 지적장애 1급 장애인이 김 교사 옆으로 다가와 대뜸 이를 보여주며 괴성을 냈다. “양치했다고 칭찬해 달라는 거예요.” 김 교사가 아들 대하듯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줬다. 부부에겐 아이가 없다.

▷엄마와 아들 같네요.

김현숙 교사=“가끔 엄마, 아빠라고 불러서 친부모들이 섭섭하다고 해요. 자녀를 갖지 않은 것도 내 자식에게 먼저 손이 갈까 싶어서였습니다. 한 번은 청각장애 여학생 6명을 데리고 목욕탕에 갔는데 친딸인 줄 알고 아주머니들이 ‘아이고, 아들은 있니껴’ 하시는 거예요. 걱정하실까봐 (남편을 보며) 큰아들 하나 있다고 했죠.”

▷식구가 몇 명인가요.

이종만 원장=“청각·지적장애인 57명, 새터민 2명, 70세 이상 고령자까지 77명이 일합니다. 하루 2.5t의 새싹을 출하하는데 전국 최대 규모입니다. 작년엔 23억3000만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주 5일 일하고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아요. 한 달에 70만원씩 적금을 붓는 사람도 있어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두세 명뿐이에요. 이익은 장애인 복지를 위해 씁니다. 2년제 야간대학을 졸업하도록 지원해주고요.”

나눔공동체는 세척과 포장이 이뤄지는 911㎡(276평)의 컨테이너 시설을 갖추고 있다. 미국에서 수입한 배양기 7대를 비롯해 최신 살균 소독 설비도 들여놨다.

▷위생설비가 인상적입니다.

김 교사=“장애인들이 만든다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기 싫었습니다. 어떤 장애도 상관없지만 감염 우려가 있는 질병을 앓는 사람은 고용하지 않아요. 하루에 서너 번씩 소독하고 작업장도 청결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아무래도 생산성은 떨어질 것 같은데요.

이 원장=“생명은 생명이 다뤄야 합니다. 경쟁업체들은 인건비를 줄이려고 씨앗을 기계에 넣고 싹이 날 때까지 돌리면서 키워요. 그러면 새싹이 자라면서 부딪치고 상처입죠. 저희는 소독한 장갑을 끼고 손으로 일일이 뒤집어주면서 4일 동안 싹을 틔웁니다. ‘핸드메이드’죠. 저는 새싹을 키울 때 세 가지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내가 먹는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장애인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다


▷언제부터 장애인들과 지내셨나요.

이 원장=“1980년부터 수화통역을 하면서 청각장애인을 만났어요. 이들이 졸업하면 서울의 가리봉, 구로 봉제공장으로 취직시켰죠. 안동에서 밤 11시50분 야간열차를 타면 새벽 4시에 서울에 도착해요. 그런데 어렵게 일자리를 마련해줘도 1~2년 만에 엉망인 꼴로 돌아와요. 월급도 못 받고 싸워서 경찰서에 가 있고 동료와 눈이 맞아 옥탑방에서 동거하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더군요. 그때 깨달았죠. 장애인은 자녀까지 3세대로 이어지는 문제라는 걸요.”

▷나눔공동체를 그때 생각하셨군요.

김 교사=“한 여학생이 계기가 됐습니다. 대구에 취직했는데 3년 뒤 만삭의 몸으로 절 찾아왔어요. 그 친구의 부모는 결혼도 하지 않은 벙어리 딸이 임신했다고 내쫓았죠. 한 달 뒤 흑인 혼혈아가 태어났습니다. 몹쓸 짓을 많이 당했더군요. 장애인도 자립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시작은 어땠나요.

이 원장=“재활학교 교사인 아내를 그만두게 하고 퇴직금을 받아 장애인 봉제공장을 시작했습니다. 1급 미싱사인 집사람은 주 전공이 남방 주머니 재봉입니다. 저는 단춧구멍 만드는 거예요. 청각장애인은 수화로 말하고 눈으로 들어야 하는데, 봉제는 눈과 귀를 다 빼앗기는 일이어서 무척 고됐죠. 작업여건도 좋지 못했어요. 퇴근 무렵엔 옷감에서 나오는 새하얀 먼지가 눈썹과 머리에 수북이 앉아서 산신령이 됐죠. 그때와 비교하면 새싹 재배는 천국입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요.


이 원장=“외환위기가 터질 무렵인 1997년부터 참 힘들었습니다. 장애인 86명이 하루 1700장의 옷을 만들어 이랜드에 납품했는데 하루아침에 일감의 3분의 1로 줄더군요. 1999년엔 빚이 3억7000만원까지 불었어요. 아내와 야반도주하려고 했습니다. 저들이 내 피붙이도 아니고 먹여 살려야 할 의무도 없는데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었죠. 실천하진 못했지만요.”

○For(위해서)가 아니라 With(함께)를 추구한다

2001년부터 기적처럼 상황이 나아졌다. 국내 봉제공장이 대부분 철수했던 터라 일감이 몰려왔다. 빚을 다 갚고 살림도 나아졌다. 부부는 땅과 건물, 퇴직금 6억9000만원 전부를 출연해 2002년 6월11일 경북 최초로 장애인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었다.

▷새싹 사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이 원장=“2004년 5월 봉제공장을 그만두고 사업 아이템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어요. 2007년 일본에서 우연히 본 새싹 재배를 시작했는데 사기도 여러 번 당했어요. 처음엔 팔 곳이 없어서 마음고생도 했고요.”

2008년부터 새싹은 입소문을 탔다. 이듬해 13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매년 평균 3억원씩 매출이 성장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이 원장은 지난해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땐 혼자였지만 이번 호암상은 아내와 함께 받는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이 원장=“이 나이에 눈물이 핑 돌더군요. 지난 32년간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제게 삶을 나눠준 장애인 가족들에게 고맙습니다. 연탄가스 중독에서 날 살려준 당신, 고마워요.”

▷상금 3억원은 어떻게 쓰실 건가요.


김 교사=“지금 작업장은 봉제공장을 개조해서 일하기 불편해요. 돈을 더 모아서 동선이 편리한 새싹 재배장을 짓고 싶습니다.”

이 원장=“‘이 땅에 장애인은 없다. 인간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말이 있죠.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이에요.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인이 되는 과정이죠.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인간이란 이름을 부여하는 데 얼마나 인색합니까. 이제 장애인을 위해서(for)가 아니라 함께(with) 살아가야 합니다. 저희 부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장애인들이 떳떳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인터뷰 다음날, ‘Only grace’라는 이름으로 이메일이 한 통 왔다. “무사히 도착하셨는지요? 무척 피곤했으리라 생각이 드는군요.

가끔 서울의 삶이 힘겨울 때면 언제든지 주저하지 마시고 새싹 비빔밥 먹으러 오세요!”

안동=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 유은복지재단은

이종만 원장이 장애인 직업재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사재를 출연, 2002년 6월11일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이다. 경북 최초의 장애인근로작업장으로 청각, 뇌병변, 지체장애 등 장애인 5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911㎡(276평) 규모의 새싹 재배시설과 936㎡(283평)의 비닐하우스 3동, 항온·항습·항균 시스템, 에어샤워기 등 위생시설을 갖췄으며 하루에 2.5t의 새싹을 생산한다. 약품처리하지 않은 전문씨앗과 수질검사를 거친 지하암반수로 알팔파, 무순 등 무공해 새싹채소 22종을 재배한다. ‘초록이슬새싹’ 상표로 어린잎채소모둠, 콩나물 등의 제품을 판매하며 새싹에서 추출한 원료를 납품해 새싹국수, 새싹비누도 만든다.

이 원장 부부는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안동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이 원장은 1996년 연세대 교육학 석사, 김현숙 교사는 2007년 숭실대 사회복지학 석사를 마쳤다.

유은복지재단은 후원금, 지정기부금, 자원봉사 후원을 받는다. (054)858-99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