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2010년 2월 3D LED(발광다이오드) TV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2009년 4월 개발에 들어간 지 8개월 만의 일이었다. 시장에선 “삼성이 단기간에 성공한 비결이 뭔가”라는 궁금증이 많았다.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인 김종만 명지대 산업경영학과 교수는 11일 ‘런 삼성 포럼’에서 그 이유를 ‘STAR’에서 찾았다. 시스템(system)과 최고 리더(top), 혁신역량(ability), 연구 및 공유(research)가 삼성의 혁신 비밀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삼성이 8개월 만에 3D TV를 개발한 것은 실패 경험을 자료로 축적해놓은 시스템 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2001년부터 3D TV를 연구하다 포기했고 2007년엔 프로젝터 TV 방식의 3D 제품을 내놨지만 시장에서 혹평을 받고 철수했다. 삼성은 3D TV뿐 아니라 다른 실패 경험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뒤 결정적인 순간에 엑스파일처럼 사용한다는 게 김 교수의 얘기다.

김 교수는 또 다른 기업과 삼성의 시스템은 완전히 다르다고 단언했다. 일반 기업은 정보기술(IT) 엔지니어 관점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비해 삼성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철저히 최고경영자(CEO) 입장에서 구축하는 게 삼성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일반 기업들은 시스템 구축을 외주업체에 맡기지만 삼성전자는 철저히 사내에서 실현한다는 점도 다르다. CEO 눈높이에서 만들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삼성에선 회사 시스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이가 십중팔구 CEO라고 했다.

김 교수는 CEO 중심의 인프라 구축에 나서게 된 건 이건희 삼성 회장의 혁신 철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피드경영 체제를 갖추기 위해 정보화 시스템을 잘 마련해놓는 게 이 회장이 추구하는 핵심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삼성은 혁신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직과 제도를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혁신 사례를 연구하고 전파해 혁신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게 삼성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투명성도 삼성의 강점으로 꼽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전체 산업에서 불량률이 가장 낮은 업종은 항공우주산업이다. 100만개 제품 중 3.4개 이하의 불량품만 나오는, 이른바 ‘식스 시그마’ 수준의 불량률을 기록하는 유일한 업종이다. 김 교수는 그 이유를 사람 목숨과 직결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찾았다. 비행기 한 대가 떨어지면 탑승객 대부분이 목숨을 잃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항공우주산업처럼 사람 목숨과 직결된 의료 현장에서 사고율이 높은 이유는 뭘까. 김 교수는 의료 행위 자체의 과정이 투명하지 못해서라고 분석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오진을 예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혁신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의료산업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임직원들에게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수많은 토론을 거쳐 방향이 정해지고 업무 프로세스가 정립되면 CEO라도 임의로 시스템을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든 게 삼성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