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 시장선점 효과…수수료 인하 '치킨게임' 유리한 고지
삼성자산운용은 고성장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사업에서 독보적 시장 지위를 갖고 있어 투자 대상으로도 주목할 만한 회사다. 아직은 비상장기업이지만 모기업인 삼성증권 주식을 통해 우회적으로 투자가 가능하다. 삼성증권의 삼성자산운용 지분율은 65.3%에 이른다.

통상 자산운용사는 펀드와 투자일임자산의 안정적인 운용보수를 주(主)수익원으로 하기 때문에 실적 안정성이 높다. 또 자기자본으로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투자에 따른 리스크가 낮다. 여기에 높은 배당 성향과 자기자본이익률(ROE) 또한 투자 관점에서 매력포인트다.

◆업황 좋지 않지만 시장 지배력 막강

삼성자산운용은 2011년 순이익 312억원을 거둬 삼성증권 연결기준 전체 이익 1930억원의 16.2%를 기여했다. 펀드 운용자산 기준으로 국내 자산운용사 중 규모로 1위 사업자다. 주식형 펀드 기준으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이어 2위다. 3월 말 현재 총 운용자산은 펀드 약 40조6000억원, 투자일임자산 86조4000억원이다. 투자일임자산은 연기금 외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위탁자산이 많아 채권 운용 비중이 높다.

업황이 전반적으로 꺾였다는 점은 투자 시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국내 펀드시장은 주식형 펀드가 2008년부터 순유출되면서 77조원 수준에서 정체돼 있다. 금융위기 이후 수차례 지수 급락을 겪은 뒤 개인 주식투자자들은 펀드 가입도 지수 수준별로 설정과 환매를 반복하는 박스권 트레이딩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 인해 대형 운용사 일부로만 공모 주식형 펀드 자금이 집중됐고, 나머지 운용사들은 점차 주식형 수탁액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주 수익원인 보수는 금융 당국의 소비자 보호 강화 정책에 의해 인하 압력을 받고 있다. 정부의 금융 수수료 인하 압력은 운용사뿐 아니라 금융업계 전반에 걸쳐 더욱 강해지고 있다.

업황 전망은 이처럼 밝지만은 않지만 삼성자산운용의 성장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작년 순이익은 324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올해는 ETF 운용자산이 약 32% 성장하고 작년 구조조정 비용의 기저효과 등으로 인해 466억원을 거둘 전망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ETF 운용자산은 8조3000억원 수준으로 작년 같은 시기보다 49% 급성장했다. 삼성자산운용은 ETF 시장 점유율이 52%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향후 5년간 삼성자산운용의 연평균 ETF 성장률은 23.5%로, 2017년 23조원 규모로 현재의 3배까지 커질 전망이다.

◆수수료 인하 경쟁 최종 승자 가능성

삼성자산운용의 주된 수익원인 ETF는 상위 사업자가 수익을 독식하는 구조다. 특히 1위 운용사는 시장 선점효과를 누리기 때문에 수수료율 인하 경쟁이 벌어져도 훨씬 유리하다. 가격 경쟁이 격화될 경우 보수 인하를 더 감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킨게임’이 벌어지면 오히려 경쟁사들을 도태시킬 수 있다. 결국 1~2위 운용사로 재편되는 게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1위 블랙록, 2위 스테이트 스트리트, 3위 뱅가드 등 3개사가 8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선두업체의 시장 지위는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블랙록은 지난 1월 크레디트스위스(CS) 미국 ETF 사업을 인수했다. 미국 시장 내 10위권이던 CS는 수수료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국내 ETF 시장에서는 2위 미래에셋자산운용 아래 포진한 업체들의 수수료율 인하 경쟁이 치열하다. 비교적 초창기에 ETF 시장에 진출한 우리자산운용까지 점유율을 올리기 위해 수수료율을 인하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신운용, KB자산운용 등도 삼성자산운용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인하 경쟁에 가세했다. 5위 이하 중견 운용사들도 ETF 시장을 초기로 판단하고 공격적인 수수료 인하 전략을 쓰고 있다. 상위사들이 대표종목 점유율 굳히기에 들어가기 전에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ETF는 범용 금융상품이기 때문에 1위 사업자도 수수료율을 인하, 경쟁사와의 보수 격차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현재 삼성의 KODEX200 보수는 0.3%로, 경쟁사 대표지수 상품들의 0.05~0.15%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삼성자산운용의 ETF 부문 운용보수는 지난해 270억원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순영업수익 1283억원의 21.2%를 ETF가 차지했다. 통상 ETF 본부의 전문인력 인건비와 마케팅 비용이 ETF 운용의 원가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자산운용 부문에 비해 더 월등한 영업이익률이 예상된다.

◆PER 35배 적용 가능할 듯

비상장인 삼성자산운용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운용사 중 상장한 회사가 없어 비교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해외 운용사들의 주가를 참고해 산출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뮤추얼 펀드의 최고 전성기는 1995~1998년이다. 당시는 주가가 급등하고 주식형 펀드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자산을 빠르게 불린 프랭클린 리소시스와 티로우 프라이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각각 30배와 35배까지 상승했다. 현재 ETF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을 감안할 때 삼성자산운용은 당시 미국 대형 운용사들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을 적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

국내 증권사들의 경우 과거 PER 평균이 15배 수준이었고, 호재가 발생했을 때는 20배까지 높아졌다. 증권업계와 달리 운용업계는 삼성자산운용이 압도적 1위를 하고 있고, 성장성도 더 높다. PER 35배가 정당화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국내 증시를 반영한다면 오리온, LG생활건강 등의 성장주와 비교가 가능할 듯싶다. 오리온은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이 올해 26%, 내년 23% 수준으로 각각 예상된다. 이 회사 PER은 올해 실적 기준 34배에 이른다.

자산운용 시장선점 효과…수수료 인하 '치킨게임' 유리한 고지
현재 장외시장에서 형성된 삼성자산운용의 주가는 약 2만원이다. 주가수익비율(PER) 12배, 주가순자산비율(PBR) 1.9배 수준이다. ETF 비즈니스의 독보적인 시장지위와 성장성을 고려하면 과도하게 낮다고 판단한다. 장기적으로 글로벌 ETF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미국 블랙록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수도 있다고 본다. 추후 예상되는 운용보수율 인하 경쟁에서 일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후에 시장이 재편되면 시장 장악력이 더욱 커져 ETF 시장 성장의 과실을 더 크게 누릴 것으로 전망한다.

이치영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 cylee@etrad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