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1년의 실적을 두고 미국과의 FTA에 대한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통상당국은 무역과 투자 측면에서 협정 이행 1년의 실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비해, 반(反)FTA 단체들은 당국이 제시하는 경제 이익이 부풀려져 있고 실익이 없다는 점을 들어 협정 폐기를 주장한다.

양측 주장을 살펴보면, 객관적 사실에 대한 해석 차이가 크다는 점 외에 장기간에 걸쳐 효과가 실현되는 FTA 협정을 1년 만에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외 통상환경의 변화가 수출입 및 투자 실적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무역통계를 액면 그대로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도 아쉽다. 지난해 한·유럽연합(EU) FTA 1년 실적 평가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점이 있었다. 최악의 재정위기와 국가부도 사태를 겪고 있는 유럽 경제의 현실을 무시하고 1년치 수출입 통계로만 EU와의 FTA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통상환경 변화를 고려하면서 FTA 수출입 실적을 평가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므로 지난 1년간의 한·미 FTA 실적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몇 개월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FTA 상의 특혜관세 품목의 수출입 실적을 보면 협정의 실효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FTA 혜택품목의 수출은 6.4% 증가한 반면, 비혜택품목의 수출은 2.4% 줄어들었다. 또 중소기업 50대 수출품 가운데 38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했고, 이 중 28개 품목은 FTA 혜택품목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미 FTA 협정이 한국의 수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으며, 특히 중소기업 수출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행된 협정에 대해 불필요한 논란을 제기하기보다 더 큰 경제효과 실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특히 새 정부 들어 통상정책은 산업정책과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산업통상자원부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앞으로 투자자정부제소권(ISD), 개성공단 물품 원산지 인정, 설계사 등 자격증 상호인정 같은 한·미 FTA 보완협의도 추진돼야 하지만, 산업통상 측면에서 보면 FTA 허브망 활용전략 수립이 시급한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한국의 FTA 정책은 가급적 많은 국가와 양자간 FTA 체결이었고, 이런 접근의 이면에는 FTA 허브국가로의 도약이란 목표가 있었다. FTA 허브국가에 투자한 기업은 넓은 양자간 FTA 망을 바탕으로 원자재와 부품을 무관세로 수입할 수 있고, 생산된 품목을 FTA 대상국에 관세부담 없이 수출할 수 있다. 따라서 다국적 기업들은 FTA 허브국가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된다. 지난해 한국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110% 늘어난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적극적인 FTA 협상 추진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미국, EU, 인도 및 아세안과 FTA를 체결했다. 현재 이행 중이거나 이행을 앞둔 10개의 FTA에다가 한·중 FTA 등 협상이 진행 중인 6개의 FTA를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FTA 허브망을 구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 FTA는 우리나라 FTA 허브망에서 핵심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FTA 허브국가로 발전했지만, 정작 FTA 허브의 장점을 누리기 위한 방안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5년간 담당하지 않았던 통상정책 역량을 정상적인 궤도에 올려놓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지만, FTA 측면에서 보면 산업과 통상을 연계한 정책의 핵심은 FTA 허브국가로서의 경제이익 실현 방안이 될 것이다. 통상이 산업정책과 투자정책의 틀 속에서 검토돼야 할 것이다.

또 통상정책은 개방성과 적극성을 유지해야지 산업 고려로 보호주의적 색채를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11일 퇴임한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앞으로 산업통상자원부를 위해 일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과 민족을 위해 일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FTA 허브국가로서의 개방성이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끌어오고,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동력이 되도록 한다는 원칙이 확립돼야 할 것이다.

정인교 < 인하대 교수·경제학 kyo@in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