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라면은 뭘까. 1963년 삼양식품이 만든 ‘삼양라면’이 바로 1호 라면이다. 당시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94)이 우연히 남대문시장을 지나가다 배고픈 서민들이 5원짜리 ‘꿀꿀이 죽’과 같은 음식을 사먹기 위해 줄을 길게 선 것을 보고 ‘서민들에게 값 싸고 영양가 있는 한 끼를 먹게 해야겠다’고 다짐한 게 탄생 배경이다.

당시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였던 만큼 라면을 생산할 만한 기술도 기계도 없었다. 정부에 도움을 청해 5만달러를 지원받아 라면을 생산하게 된 삼양식품은 기계값을 뺀 2만3000달러를 정부에 반납했다.

서민을 향한 전 명예회장의 진정성은 당시 일본 라면업계의 대표 기업이었던 묘조(明星)식품의 오쿠이 사장을 감동시켰다. 그 결과 기술 지원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중량 100g에 10원이던 삼양라면은 지금처럼 주황색 포장지 가운데 원 모양을 넣어 따듯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당시 이것저것 남은 음식을 비위생적으로 섞어 끓였던 꿀꿀이 죽이 5원, 커피값이 35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삼양라면의 10원이라는 가격은 ‘영양가 있는 한 끼 식사 값’으로는 싼 편이었다. 게다가 밥과 국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한국인에게 국물과 면이 있는 라면은 친숙하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삼양식품은 라면을 보급하기 위해 당시로선 파격적인 ‘무료 시식회’를 열기도 했다. 전 직원과 가족들이 극장, 공원 등에서 직접 라면을 끓여 소비자들에게 무료로 맛보게 한 것이다.

이 같은 정책은 기업에는 부담이기도 했다.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10원이라는 판매가격을 7년여간 유지한 데다 초기에 벌였던 무료 시식회에 많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라면의 보급 확대와 판매 촉진을 위해서는 투자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전 명예회장의 판단이었다.

초기에 저조했던 매출은 1966년 11월 한 달 동안 240만 봉지가 팔려 나갈 정도로 늘어났다. 1969년에는 월평균 1500만 봉지씩 팔렸다. 처음 제품을 선보였던 1963년에 비해 300배나 성장한 것이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외에도 ‘곡면’(1965년), ‘미니라면’(1967년), ‘칼국수’(1969년), ‘삼양짜장면’(1970년)을 줄줄이 선보였다.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냉면인 삼양냉면(1970년)도 만들었다. 1972년엔 끓인 물만 부어 3분 후에 바로 먹을 수 있는 ‘삼양 컵라면’을 처음으로 내놓았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