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한국 자동차산업 40년···제2위기 맞았다
② 수입차 급성장, 국산차 업계 위협한다
③ 현대·기아차 도요타 제칠수 있을까
④ 2015년 한국 자동차 산업 향방은
⑤ 현대·기아차 글로벌 톱3 될까, 도요타-GM-폭스바겐 3강체제에 도전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는 7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한 기업이 50% 넘는 점유율을 차지한 국가는 없다. 경쟁 업체가 없다는 것은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 관점에서 장애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 흔들리지 않던 현대·기아차의 성장세가 지난해가 정점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흑석동에 위치한 중앙대학교 법학관에서 이남석 교수(경영학과 ㆍ사진)를 만나 한국자동차산업의 현재와 향후 과제를 들어봤다. 이 교수는 지난 10년보다 앞으로 10년이 현대·기아차에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남석 중앙대 교수 인터뷰>

도요타·GM 등 글로벌 경쟁 업체 위기로 현대차 급성장
진검승부 이제부터···"브랜드 인지도·디자인 더 신경써야"

- 자동차산업이 국가 산업에 미치는 효과는.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파급 효과가 크다. 자동차뿐 아니라 부품, 물류, 운송, 창고, 보험, 할부금융, 렌트카 사업까지 방대한 관련 산업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은 최근 10년 사이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뤘다. 현대차의 글로벌 생산체제가 진행되면서 부품 협력업체도 덩달아 글로벌화가 진행됐다. 현대모비스는 작년 상반기 매출만 15조 원이 넘었다. 웬만한 대기업 1년 총 매출보다 많다.

- 현대차가 지난 10년간 고속 성장한 배경은.

현대차는 1990년 대 후반 IMF 외환위기 이후 기아차와의 통합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꾀했다. 플랫폼 공용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 일본 도요타가 리콜사태나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헤매고, 제너럴모터스(GM)가 2008년 말 금융위기 여파로 파산하는 사이에도 많은 이점을 누렸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 등 본연의 경쟁력 외에 외부 환경 요인이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다. 외부환경 변수에 의한 득실을 떠나 어느 정도 비슷한 조건에서 실력만으로 글로벌 선도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지난 10년간 현대차가 이룩했던 성장세를 향후 10년 후에도 이어나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 구체적인 성장 요인을 꼽자면.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1990년대 후반 들어오면서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과거엔 완성차 업체가 자체적으로 부품 공급 계열구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글로벌 소싱'이 세계적 트렌드가 됐다.

계열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도 조건만 맞으면 납품할 수 있는 시스템에 의해 브랜드별로 사용하는 부품에 큰 차이가 없게 됐다. 결과적으로 부품업체 규모가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현대차도 많은 혜택을 봤다.

현대차는 특히 모듈화로 최대 수혜를 누렸다. 모듈화는 덩어리 반제품 상태로 부품업체들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구조다. 모듈화의 진전으로 과거보다도 훨씬 적은 수의 조립작업으로 차가 만들어진다. 현대차가 중국에서 2007년부터 2년간 연 40% 성장을 기록한 것도 모듈화 영향이 크다.

작년 1월 베이징현대 공장에 갔을 때다. UPH(시간당 생산 대수)가 60대 이상이면 생산성이 높은 것인데 조립라인 전광판에 UPH가 67대로 떴다. 작업자들의 업무강도도 낮고 느슨한데 왠 일일까 봤더니 모듈화 때문이었다. 이미 부품업체가 반조립 된 상태로 보낸 부품을 들여오니 절대적인 생산성지표는 의미가 없어졌다. 모듈화는 생산성뿐만 아니라 현대차의 원가절감에 도움이 됐다.

부품업체들은 모듈화로 규모는 커졌지만 완성차업체에 과거 단품에서 지금은 반조립상태로 납품해야 한다는 책임 부담이 커졌다. 수익률도 문제다. 현대차가 영업이익률 10% 이상 내는 만큼 부품업체도 똑같이 됐냐는 거다. 현대차의 성장에는 이런 배경도 있다.

- 르노삼성과 한국GM이 내수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데.

국내 자동차산업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외형적으론 성장했지만 아슬아슬하다. 대우자동차는 GM에 넘어갔고 쌍용자동차도 상하이차를 거쳐 인도 마힌드라에 인수됐다. 그나마 르노삼성이 내수에선 간간히 역할을 해줬는데 국내 판매 라인업도 별로 없다. 과거 삼성출신 인력(매니저 임원급)은 거의 다 빠져나갔다. 프랑스 기업 마인드로 경영하고 있는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굉장히 불안하다. 경쟁 상대가 있어야 기업도 더욱 발전하는데 현대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한국 국적의 자동차 메이커가 없어 아쉽다.

자동차산업은 100% 경쟁논리에만 맡길 순 없다. 글로벌 시대에 외국기업과 차별을 해선 안되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육성이 매우 중요하다. 자동차 업체가 국가 정체성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한지는 자국 브랜드 대부분(랜드로버, 재규어,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이 외국에 팔려 하청공장으로 전락해 버린 영국 자동차 산업을 보면 알 수 있다. 시장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조차 GM이 파산했을 때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 수입차 대응도 필요한 시기 같다.

수입차 점유율이 10%를 넘었다. 수입차와의 전면전이 시작됐다. 현대차가 최근 가격을 조금씩 내리는 제스처를 보이고 있으나 가격은 더 이상 인상 여지가 없다. 회사에 대해 소비자들의 쌓인 불만도 많다. 수입차의 거센 공세로 많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본다. 지난해가 현대차 입장에서 정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급격하게 외형이 팽창하다 보니 품질, 부품업체의 동반 글로벌화에 따른 경영능력 문제 등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원고 엔저, 환율 리스크 등 외부 환경도 불리하다.

- 현대차가 뚜렷한 철학이나 개성이 부족하단 얘기도 있는데.

긍정적 측면에서 보면 과거 먹고 살기 어려울 때 품위를 찾을 순 없지 않겠는가. 성장 과정에 겪을 수 밖에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기아차 디자인을 바꿔 놓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기술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점이 도래했을 때 확보해 놓은 미래 기술이 없으면 현대차가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 현 시점에서 현대차에 필요한 기술을 꼽자면.

현대차가 미래기술 개발 측면에서 여력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등한시했다고 볼 수 있다. 하이브리드 기술은 선진 업체의 특허로 다 막혀 있어 기술 개발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디젤 기술도 상대적으로 없고 그나마 수소연료차에 방향을 잡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투싼 수소연료전지차 양산 시스템을 선보였던데 실효성이 전혀 없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상업화가 안되고 실용화되기 어려우면 기술로 가치가 없는 것이다. 도요타는 왜 수익성도 크지 않은 하이브리드 기술 개발에 투자해 양산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를 내놨을까. 철학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멀리 내다봐야 한다.

- 현대차가 경쟁력을 지속하기 위한 전략은.

현대차가 안고 있는 문제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도전 과제와 성격이 다르다. 생산성, 자동변속기 성능, 원가 절감 등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이젠 생산적 측면의 경쟁력보단 비생산 측면의 경쟁력이 훨씬 중요해졌다.

브랜드 가치나 디자인 경쟁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강조되고 있다. 과거보다 현대차의 브랜드 인지도가 많이 올라갔으나 여전히 선두업체보다 불리한 조건이다. 특히 브랜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신뢰'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해 미국에서 불거진 '연비 과장' 사태는 시사점이 크다.

현대차는 작년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안일한 대비가 결국 연비 문제로 터졌다. 소비자와의 믿음, 신뢰보다 마케팅 측면에서 좋게만 보이려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게 됐다. 언론 보도만 봐선 현대차가 잘 조정해 마무리돼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사태가 반복되면 신뢰를 잃게 된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동안 독점 구조여서 가격을 인상해도, 옵션으로 가격을 부풀려도 소비자는 현대차를 선택해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입차가 국산보다 싼 모델도 많아졌고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현대차 메리트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보다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훨씬 커진 셈이다.

☞ 이남석 교수는…
1964년 서울 출생. 자동차산업 전문가로 중앙일보 '올해의 차(COTY)' 심사위원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 경영학 석사 및 영국 옥스포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삼성종합화학에 입사한 후 삼성중공업 승용차사업 프로젝트팀, 삼성자동차 해외업무팀,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등을 거쳤다. 옥스포드대 박사과정 중 2002년 5월부터 2004년 말까지 프랑스 르노자동차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6년 8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대한방직 부사장과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경닷컴 김정훈/김소정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