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진짜 필요한 것은 '메기'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일본 소니의 대표 게임기다. 1994년 출시된 뒤 지금까지 3억2000만대가 팔린 히트 상품이다. ‘소니 게임기’가 처음 선보였을 때는 말이 많았다. 매출 3조9834억엔(1995년 기준)짜리 대기업이 아이들 장난감까지 만드느냐는 비판이었다. 소규모 게임업체들은 초토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랐다.

그러나 기우였다. 소니의 라이벌인 닌텐도 역시 승승장구했다. 가정용 게임기인 닌텐도64와 위 등을 잇따라 내놓고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했다. 게임산업이 스마트폰의 영향을 받기 직전인 2009년 매출은 1조8386억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처음 나왔던 그 당시보다 340% 성장했다. 거대 기업인 소니에 먹히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다.

소니와 닌텐도의 동반성장

이런 상황이 지금 한국에서 재연될 수 있을까? 답은 노(no)다. 삼성이나 LG가 게임기를 만든다고 하면 파렴치한 행위쯤으로 지탄받을 게 분명하다. 좌파 시민단체들이 재벌공화국을 규탄하고, 정부는 눈을 부라릴 게 뻔하다. 경제민주화란 화두가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전락시킨 듯한 요즘 분위기에선 말할 것도 없다. 서울시가 채소 등 51개 품목을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판매금지 권고상품으로 지정한 것만 봐도 그렇다. 휴일 영업제한, 출점제한도 모자라 이젠 판매 상품 목록까지 당국이 정한다는 판이다.

[한경포럼] 진짜 필요한 것은 '메기'다
문제는 대기업을 누른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상의가 소매슈퍼마켓 895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점포경영이 어려워진 이유로 경기 위축(51.0%), 경쟁 심화(31.9%)가 꼽혔다. 대형마트만 없으면 된다는 일각의 주장과는 다른 결과다. 아니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은 실은 아무도 없다. 그저 대형마트를 마녀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이라는 의미없는 도식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진다. 올해 중소기업 지원예산은 7조632억원으로 작년(6조1547억원)보다 15% 늘었다. 중기 지원 신용보증 규모는 75조2000억원으로 4조원 증가했다. 올초 발효된 소상공인 지원법에 의해 1조4169억원이 따로 배정됐고, 10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진흥기금 설립도 검토되고 있다.

노 前대통령의 중기 지원 무용론

무분별한 중소기업 지원은 논란의 대상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도적인 중소기업 보호에 반대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그는 특정분야는 중소기업만 사업할 수 있도록 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와 공공기관이 중기협동조합의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단체수의계약제도를 2007년 폐지했다.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나쁜 제도”라는 게 노 전 대통령의 시각이었다.

MB정부는 동반성장을 내세우며 2011년 다시 중소기업 적합(고유)업종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다. 우리금융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지급이자 비용으로 나눈 값)이 1 미만인 한계기업 중 중소기업은 2010년 139개에서 작년 161개로 증가했다. 대기업도 8개사에서 19개로 늘었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늘어난 것이다.

무분별한 지원은 이처럼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하향평준화시키고, 약소(弱小)기업과 좀비기업만 양산할 위험이 있다. 경쟁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강한 기업을 육성하는 게 정답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말처럼 메기를 풀어놓은 논의 미꾸라지들이 더 통통하다. 천적을 피해 도망다니며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다. 미꾸라지에게 먹이를 주는 게 아니라 더 많은 메기를 푸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