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시장에서 5년 전 의류 도매업으로 시작한 작은 회사가 일을 냈다. 7명의 직원들이 도매업으로 연매출 20억원을 내다가 직물 염색사업에 뛰어들어 와인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와인으로 염색하는 청바지 기술’을 판 것이다.

토종 섬유업체 에코야의 이윤하 대표(사진)는 20일 “이탈리아 제직업체(원사를 염색한 뒤 원단을 짜는 회사) ITV와 10년 동안 에코야 기술(와인텍스)을 사용하는 로열티로 932만유로(약 135억원)를 주는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2010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청바지 원단 전시회(데님 바이 프리미에르 비전)에 참가한 것이 이번에 결실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매년 매출 규모에 따라 5~10%를 우리에게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감의 떫은맛을 내는 성분이 천을 염색하는 핵심이라는 점에 착안, 떫은 탄닌 성분이 들어간 와인으로 염색하는 새로운 시도를 성공시켰다.

와인으로 염색하면 비용이 더 많이 들지 않느냐고 묻자 이 대표는 “와인 단가가 높기 때문에 와인에 물과 탄닌 가루를 적정 비율로 섞어 염색하는 작업을 수천 번 반복했다”며 “그 결과 친환경적인 생산과정은 물론 생산원가도 낮출 수 있었다”고 답했다.

에코야가 개발한 ‘와인텍스’는 일단 청바지 원단을 와인과 물, 탄닌 가루로 만든 염색물에 담근 뒤 친환경매염제로 화학작용을 일으켜 청바지 색깔을 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은 전혀 들어가지 않고 물 사용량도 최소화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단순한 청색만 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청색 톤과 바랜 듯한 색깔까지도 다 표현할 수 있다”며 “기존 화학염료로 염색하는 기법(인디고 염색)과 비슷한 비용으로 데님, 면, 실크, 가죽 등 모든 천연 섬유에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에코야와 계약을 맺은 ITV는 지난해 11월 말 와인텍스의 독점 사용권 계약을 맺고 현재 디젤, 리바이스, 타미힐피거 등 유명 청바지 브랜드들과 접촉 중이다. 최근 청바지 브랜드들이 여러 환경단체로부터 “물을 과다하게 사용하고 포름알데히드, 톨루엔 등 각종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나쁜 회사”라는 공격을 받은 것도 에코야로선 좋은 기회라는 분석이다. 리바이스는 지난해부터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한 청바지를 내놓는 등 친환경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ITV는 이탈리아 테라모에 있는 공장에서 와인텍스를 활용한 제품을 시험 생산 중이다. 이 대표는 “이탈리아의 저렴하고 품질 좋은 와인으로 ITV 공장에서 원단을 만들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올로 지누티 ITV 대표는 이번 계약과 관련해 “에코야의 기술력과 신시장 개척 가능성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있다”며 “앞으로 친환경 청바지 산업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