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부석이 된 유기견 삼선이 이야기

"삼선아 이리와서 밥먹자~"

삼선이(3살,요크셰테리어 믹스견)는 망부석처럼 앉은 자리를 지킨다. 자신을 부르는지 몰라서다. 서울 동대문 이문동의 한 유기견 보호소에 와서 ‘삼선이’라고 불리게 됐다. 이전에 함께 살던 가족은 다른 이름으로 삼선이를 불렀을 것이다. 삼선이는 그 이름을 아직 잊지 못한다. 삼선이는 보호소에 온지 꼬박 보름째다.

발견 당시 삼선이는 노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후드티에 세 개의 줄무늬가 있어 삼선이라 이름지었다.) 바깥 생활을 오래 했는지 하얀 털과 노란 옷은 제 색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삼선이는 동대문역 인근 인도에서 발견됐다. 개찰구 앞에 앉아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고 한다. 많은 인파에 주눅이 들어선지, 가족을 기다리는 건지 삼선이는 고집스럽게 그곳에 앉아 있었다.

"삼선이같은 경우는 학대를 받았는지, 버려진 상처 때문인지 주눅이 들어있고 눈치를 본다"고 보호소의 김주혁 소장(39)이 말했다. "삼선이처럼 극도로 경계를 하며 눈치를 보는 유기견이 많다. 그래도 삼선이는 적응을 잘하고 있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보호소에 온 지 꼬박 보름이 된 삼선이. 치료도 받고 깨끗이 씻었지만 피부병 때문에 생긴 목덜미의 검은 반점처럼 버려진 상처는 아직 마음에 남아있다. 하얀 털이 까만 눈동자를 덮은 탓인지 삼선이의 눈빛이 유독 쓸쓸하다.

일일 자원봉사자의 자격으로 삼선이와 산책을 나갔다. 삼선이의 하루 중 유일하게 우리를 벗어나는 시간이다. 고집스럽게 자기자리를 고수하는 삼선이지만 산책에 나설 때는 곧잘 따라 나선다. 다른 견공들은 '딸랑' 문이 열리면서 나는 종소리에 앞다투어 나가려고 한다. 지키던 자리를 털고 일어난 삼선이는 뒤로 물러나 온순히 있었다.

검은 목줄에 의지한 채 삼선이는 종종거리며 잘 좇아왔다. 함께 길을 나선 정혜인 자원봉사자(25, 여)는 "삼선이가 처음 보호소에 온 며칠간은 문밖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키우던 애견을 잃어버린 뒤부터 꾸준히 보호소에 들리는 자원봉사자다.

이날은 삼선이의 다섯 번째 바깥 나들이다. 종종거리며 잘 좇아오는 것을 보니 삼선이는 바깥 공기가 반가운 기색이다. 앞서거나 뒤서는 것 없이 나란한 속도로 걷는 삼선이는 착하고 온순했다.

30분 남짓 짧은 마실을 마치고 센터로 돌아왔다. 다시 자리를 지키는 삼선이를 보니 안쓰러웠다. 작은 우리 안에서도 부대끼며 움직이는 강아지와 고양이들 사이에 삼선이는 다시 얌전하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버려진 당시를 회상하는지 삼선이는 불안한 시선을 던진다.

삼선이는 지금 망부석이다. 가족과 헤어진 어떤 장소에서 굳어버렸다. 삼선이의 모습은 유기되는 수만마리 견공들의 자화상이다.

#유기견 공고 후 10일 지나면 안락사… 애완 동물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삼선이가 지내고 있는 유기견 보호소는 24마리의 강아지와 7마리의 고양이를 수용하고 있다. 치료와 세심한 보호를 요하는 유기 동물은 따로 작은 우리에서 요양을 한다. 서울 시내의 대부분의 보호센터가 현실에 부딪혀 ‘10일 후 안락사’라는 현행 동물보호법을 지키고 있지만 이 보호소는 입양이 될 때까지 책임지고자 한다. 다른 보호소에 갔다면 삼선이는 벌써 이 세상 강아지가 아니다.

유기 동물은 보통 아사하거나 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로 죽는다. 아니면 개장수에게 잡혀 개소주가 되거나 보신탕 가게에 팔린다. 삼선이처럼 포획돼 보호센터로 오는 것은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

운이 좋아 보호소에 정착하면 기다리는 것은 안락사다. 유기 동물들이 안락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입양뿐이다. 하지만 유기견에 대한 편견으로 사정은 여의치 않다.

김소장은 "되도록이면 사지 말고 입양 할 것을 부탁한다. 산책을 나가면 유기견이라고 더러 피하기도 하는 사람이 있다. 유기견은 하자가 있어 버려졌다고 생각하거나 오랜 바깥생활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들이 버려지는 이유는 사람 탓이지 동물의 탓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이송된 유기견들은 보호센터에서 각종 검사와 접종 등 좋은 치료와 보살핌을 받아 여느 견공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유기견은 무책임한 사람들이 달아놓은 꼬리표일 뿐이다. 소장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주느냐가 중요하다. 좋은 가족을 만난 대부분의 동물들은 버려진 상처를 잊고 잘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1년 전 유기묘를 분양 받은 김희연 씨(25)는 미미(3살) 재롱에 눈길을 뗄 수가 없다. 미미는 1년 전 김 씨가 아파트 층간에서 발견하고 직접 신고했다. 마침 반려동물을 찾던 김 씨는 미미를 입양했다.

미미의 첫인상에 대해 김 씨는 "꼬질꼬질했다. 미미를 만졌던 손을 집에 들어와 박박 씻었다"고 말했다. 김 씨 역시 떠돌이 동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것. 하지만 김 씨는 "유기동물도 버려지기 전에는 훌륭한 반려동물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굳이 분양을 따로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보살핌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입양을 결정했다"고 했다.

김 씨는 "유기견이 아프다는 것은 편견이다. 문제는 반려동물을 들이고자 하는 사람이다. 동물의 성격은 주인이 하기 나름이라 동물 탓을 하면 안 된다.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때 입양을 결정하면 주인과 애견 모두 행복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김 씨는 떨기만 하던 미미가 지금은 애교쟁이라며 연신 미미의 배를 어루만져주었다. 미미의 하얗고 풍성한 털에서 버려졌던 과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유기동물 10만 시대, 동물등록제 실효성 거두길…

삼선이와 미미 같은 동물들이 한해 10만 마리에 육박한다. 국내 반려동물 시장규모는 1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17.4%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이 중 94.2%는 개를 기른다.

농림수산검역검사본부의 ‘유기동물 발생 및 처리현황(2011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적으로 9만6268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했다. 2003년 2만5000여 마리보다 4배 많은 수준. 실제로 유기되거나 부주의로 잃어버리는 견공의 수는 공식집계의 몇 배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원봉사자 정 씨는 유기견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이기주의와 무책임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사진 속 예쁜 강아지가 갖고 싶어 샀다가 막상 직면하게 되는 배변이나 비용 문제로 버린다. 크면서 못 생겨졌다며 밖으로 내모는 경우도 있다”고 언급했다.

동물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생명 경시 풍조도 만연해 지고 있다. 어린 강아지를 대량 생산하는 개공장도 있다.

보호소장에 따르면 전국에 2000여개의 개공장이 있다. 이렇다 보니 강아지 값이 싸 분양 받는 것이 어렵지 않다. 분양이 쉬우면 책임감도 없어 애견을 쉽게 내다버릴 수 있다는 게 김소장의 설명.

유기견은 늘어나지만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포화상태이다. 당초 한달이었던 안락사 유예 기간도 10일로 줄었다. 수도권내 대부분의 보호센터가 이 방침을 따르고 있다. 자연사하거나 안락사한 동물이 46%에 달한다.

반면 유기동물 분양률은 26%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정확한 유기동물 수와 미등록 사설 유기견 보호센터의 수가 파악되지 않을 점을 감안하면 수치는 더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올 1월1일부터 동물등록제를 시행하고 있다. 3개월령 이상의 개를 소유한 사람은 시•군•구청에 반드시 등록 해야 한다. 동물보호관리시스템상 동물 등록정보를 통해 소유자를 찾기 위해서다.

애견 투기를 막고 잃어버린 가족도 찾을 수 있다. 등록은 내장형 마이크로칩이나 등록인식표 부착(수수료 별도) 등으로 가능하다. 등록하지 않을 경우 100만 원 미만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직 마이크로칩의 안정성이나 등록 대상에 '개'만 포함된다는 점 등 문제가 많다. 하지만 애견의 수를 파악하고 유기견을 구할 수 있는 좋은 제도이다. 8살 미니핀을 키우는 우은영 씨(24)는 “유기견을 위한 법인만큼 현실적으로 보안해 효과를 거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법 시행 후 현재까지 2만6000만마리의 견공들이 등록됐다.

반려 동물은 한평생 인간의 곁을 지키는 의리파다. 하지만 반려 동물과 함께 할만한 '인격'이 되지 않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 낯선 곳에 버려지는 유기동물이 많이 있다.

지금도 동물들은 버려졌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주인 곁을 맴돈다. 상처받은 유기동물에게 자신을 불러주는 따뜻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불러주면 그들은 기꺼이 인간 곁을 지킬 것이다. 길가의 위태로운 생명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한경닷컴 최수아 인턴기자 suea@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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