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고전이 쉬워진 겁니다. 전문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한문에 기초 소양만 갖췄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끔 공을 들였습니다. 다산(茶山)에 대한 연구가 더욱 풍부해졌으면 좋겠어요.”

최근《정본(定本)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를 출간한 다산학술문화재단의 정해창 이사장(76)은 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가 다산의 나라바로세우기를 위한 고뇌와 애민정신을 본받았으면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여유당전서》는 18세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학문과 사상을 집대성한 문집. 국학자 정인보 선생 등이 다산 서거 100주년(1936)을 맞아 필사본 형태로 전해 오던 다산의 저술을 정리해 1938년 신조선사에서 발간했다. 신조선사본에는《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등 다산의 대표 저서인 1표2서를 포함한 154권 76책이 망라돼 있다.

“신조선사본은 다산 연구의 교과서나 마찬가지였어요. 이후 다산 연구에 불이 붙었거든요. 2000편이 넘는 논문과 300편 이상의 석·박사 논문, 100권이 넘는 단행본이 쏟아졌습니다. ‘다산학’이라는 학문 영역이 자리 잡게 된 것이죠.”

신조선사본은 시대적 한계가 있었다. 오·탈자가 많았고 다산 저작 중 빠진 것도 상당했다. 신조선사본이 다산 연구에 물꼬를 텄다면《정본 여유당전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판본이라는 게 정 이사장의 설명. 신조선사본의 오·탈자를 바로잡고 다산 저작 원본 텍스트를 확정하는 교감(校勘) 작업을 거쳐 34책으로 다시 편집했다. 그는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가로쓰기로 편집하고 분야별로 해제도 붙였다”고 말했다.

300여종의 국내외 필사본을 일일이 대조·확인하는 정본화 작업은 간단치 않았다. 지난 11년간 전문 인력만 80여명이 투입됐다. 편집운영위원장인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이지형(성균관대)·김태영(경희대)·금장태(서울대) 명예교수 등 내로라하는 다산학 연구자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30억원의 돈이 들어갔다. 웬만한 민간단체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작업이었다.

“젊은 연구자를 위해 표점 표시 등 현대화된 텍스트가 절실하다는 학계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어요. 2년간 재단 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했는데 힘에 부치더라고요. 한국학중앙연구원 국학진흥 사업지원을 통해 국고도 지원받았어요.”

자신은 다산연구 지원자일 뿐이라는 정 이사장은 법조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자유당 말기인 1958년 행정·사법 양과에 합격, 1962년 검찰에 들어갔다. 5공 말 전두환 정부와 6공 초 노태우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했다. 이후 형사정책연구원 초대 원장으로 있다가 1990년 말부터 2년 남짓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일했다. 1996년 총선 때 경북 김천에서 무소속으로 나섰다가 낙선한 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다산학술문화재단은 나주정씨 월헌공파 종회장으로 있던 1998년에 직접 발의해 설립했다. 월헌공은 정 이사장의 17대조이며, 다산의 11대조다. 다산은 정 이사장의 직계 선조는 아니고, 굳이 따진다면 24촌이 된다.

“《정본 여유당전서》발간을 통해 다산 탄신 250주년 기념사업의 대미를 장식하게 돼 기쁘다”는 정 이사장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둔 한국 사회에 대한 조언도 했다.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큰 게 당연해요. 그러나 대통령 한 사람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바람직하지 않아요. 사회 각 분야의 전문성, 독립성이 커지면서 각자 자기 몫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어요. ‘내 탓이오’ 운동을 다시 일으키면 어떨까요.”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