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고분에 매장돼 천 년의 세월을 보냈거나 사찰에 보관 중이던 국보·보물급 문화재를 도적질해 암거래한 문화재 도굴범 일당이 쇠고랑을 찬 사건이 있었다. 당시 시가 100억원에 이르는 거래금액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일은 그들의 대담한 도굴 수법이다. 한적한 사찰만을 골라 불상 뒤쪽에 걸어논 탱화를 탈취하기도 했고, 불상의 아래쪽을 파괴한 뒤 내부에 있던 불경까지 훔쳤다고 한다. 충남 서산에 소재한 큰 절에서도 대웅전의 뒤쪽 벽을 헐고 불상 내에 넣어둔 복장유물을 훔쳐가는 사건이 있었다.

도굴범들이 분묘를 도굴할 때면 특수 제작된 긴 쇠꼬챙이를 이용한다. 전문가라면 그것을 땅속에 찔러 보기만 해도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귀신같이 알아맞힌다고 한다. 도자기가 들었다면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날 것이고, 금속 유물이 들었다면 쇠 긁는 소리가 드르륵하고 날 것이다. 그렇다면 유골만 무덤 속에 있다면 어떤 소리가 날까.

도굴범에게 가장 난감한 문제는 초목이 무성한 산속 어디에서 보물급 문화재가 매장된 분묘를 찾느냐는 것이다. 이때 풍수지리에 통달한 지관이 필요하다. 당시 사건에 수배된 이모씨 역시 문화재가 매장된 분묘를 찾는 1인자로 손꼽힌다. 많은 도굴범들이 그에게서 분묘 감식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동양의 지리관인 풍수지리가 도굴범의 도구로 이용당한 황당한 사건이다.

풍수지리에 도통한 사람은 형체를 분간키 어려운 상태에서 문화재가 매장된 오래된 분묘를 쉽게 찾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풍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추측한 것에 불과하다. 필자는 전국에 산재한 역사적 인물의 묘를 찾아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몇 명이나 명당에 자리를 잡았는지 그 숫자가 의문스럽다. 풍수적으로 본다면 혈에 제대로 자리잡은 경우가 드물었다.

그럼 왜 그런 얘기가 나돈 것일까. 족보에 밝은 사람이 패철(풍수에서 방위를 보는 도구)을 약간만 볼 줄 알아도 충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족보에는 조상의 묘가 어떤 산에 어떤 좌향으로 놓아졌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따라서 벼슬이 높아 매장 유물이 있을 법한 조상의 이름을 족보에서 빼낸 후 그 분의 묘가 있다는 산을 찾아간다. 그 다음엔 청룡과 백호가 잘 감싼 산 능선을 찾고, 이어서 족보에 기록된 좌향에 꼭 맞는 자리를 패철로 찾는다. 이미 고총으로 변해 초목으로 덮였더라도 패철만 이용하면 좌향을 기준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강화도에 있는 김취려 장군의 묘도 어느 도굴꾼이 묘를 도굴한 후 지석(誌石)을 흘렸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가 드러났다. 세월이 흘러 묘를 잃어버려도 되찾을 수 있도록 위치를 족보에 기록해 둔 것인데, 거꾸로 도굴을 부추긴 꼴이 됐으니 세상 참 요지경 속이다.

고제희 < 대동풍수지리학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