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유통산업 - 식품

업계, 당국에 유연한 관리 주문
식품업체들은 다음달 출범할 새 정부의 먹거리 물가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식품값 인상을 억누르는 강경책을 펼친 탓에 가격을 한 번 올릴 때마다 몸살을 앓았던 ‘트라우마’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새 정부 이름으로 ‘민생정부’를 염두에 둘 정도로 서민 살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이 때문에 새 정부도 가격 인상 요인을 식품업체가 최대한 흡수하도록 요구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식품업계를 대표하는 단체인 한국식품산업협회의 박인구 회장(동원그룹 부회장)은 협회 신년사에서 “정부가 개입하는 가격정책은 기업 활동에 많은 제약을 가져온다”며 “식품 가격을 잡기 위해서는 식품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원료 제조, 가공에서 물류, 유통까지 소비자에게 이르는 서플라이 체인의 전체적 측면을 관리해야 한다”고 업계의 입장을 대변했다.

새해 초 관심이 쏠리는 품목은 식품·외식업 전반에 파급효과가 큰 밀가루다. 동아원이 지난해 12월 밀가루 출고가를 8.7% 인상한 것을 시작으로 CJ제일제당, 대한제분, 삼양사 등 다른 업체도 이르면 이달 안에 비슷한 폭으로 밀가루 가격을 올릴 것이란 전망이 많다.

통상 밀가루 가격이 뛰면 수개월 내에 라면, 빵, 과자 등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른다. 한 대형 제과업체 관계자는 “제조원가에서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만큼 올 상반기에 한 차례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다만 새 정부 출범 초기에 큰 폭으로 가격을 올리기엔 부담스러운 만큼 정부와 어떻게 조율할지가 변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수는 국제 곡물시장의 움직임이다. 상당수 식품업체가 주요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엔 북남미 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밀, 콩, 옥수수 가격이 한두 달 새 최고 30% 안팎 폭등해 국내에도 적지 않은 충격파를 줬다. 요즘은 국제 곡물시장이 다소 진정된 상태지만, 어떤 돌발 변수가 터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올해 국제 곡물 가격은 공급량 증가, 파종면적 확장, 재고 안정 등의 영향으로 작년보다는 전반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면서도 “기상 상황에 따라 추가적인 가격 급등세가 연출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곡물값 강세의 여파로 사료 가격도 올라 올해 수입 육류와 유제품 가격이 다소 상승할 것으로 관측된다. 쌀, 콩, 고추, 감자, 고구마 등은 국내 작황도 좋지 않은 상태여서 이들 품목을 사용한 가공식품이 ‘가격 인상 후보군’에 빠지지 않고 거론되고 있다.

식품업체 고위 관계자는 “물가당국이 시장의 자율성을 인정해 원가 상승 시에는 이를 식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급등세가 진정되면 다시 인하하도록 유도하는 유연성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주요 경제연구소의 예측대로 저환율 기조가 유지된다면 국제 곡물값의 인상 요인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식품업체들은 새해 환율 전망을 대체로 보수적으로 잡았다. CJ제일제당은 올 사업계획에서 원·달러 환율 기준을 작년과 동일한 1080원, 농심과 대상은 이보다 조금 높은 1100원으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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